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한껏 피서의 충동을 느낄 때쯤 나는 입영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친구 따라 시험 삼아 해본 입영신청이었는데 취소하는 걸 깜빡한 대가였다. 그렇게 떨떠름하게 학교와 어색한 작별인사를 하고 공익근무요원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의 생활을 시작한지도 어느 덧 1년 3개월.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이 기간은 나에게 많은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어, 저기... 공익 아니세요? 그런데 무슨 국방부 시계가...' 라고 한다면 앞으로 서술하는 나의 생활상을 주의 깊게 읽어주길 바란다. 무시 받는 공익에게도 나름의 고민은 있다.
 나의 근무지는 세무서다. 세무서. 국세청 산하기관으로 국세를 징수하고, 탈세를 추적하는 재정의 중추기관이다. 말 한번 거창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의 임무는 단지 주차단속이다. 모든 관공서가 주차요금을 징수하지만 세무서에서는 받지 않는다. 오는 사람들은 주로 세금을 내기 위해서 ‘일부러’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의 임무는 세무서 방문객이 아닌 사람을 노리고(?) 있다가 덥썩 물어 제지하는 것이다. 앞에서 ‘단지 주차단속’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일은 꽤 괴롭다.
하루 일과 동안 "선생님, 외부차량은 주차가 안됩니다"라는 말만을 기계처럼 반복한다. 기계적인 이 말에 따른 반응은 제각각이다. 죄송하다는 반응부터 어이없다는 반응까지, 주차위반 딱지를 한 번 잘못 붙여놨다가는 욕먹기 십상이고 손찌검을 당하기도 부지기수다. 공익근무요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쉽지 않았다. “어딘가 하자 있는 놈”, “멀쩡한 놈이 왜 여기서 있는 거야. 군대가 그렇게 가기 싫냐” 등 그들의 눈은 나에게 무언의 조소를 하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처음이어서 한 동안은 잠이 들면 멱살을 잡히고 욕을 먹는 꿈을 꾸곤 했다. 그러나 치솟는 울화통을 삶아 먹을 수밖에. 나는 공무를 수행하는 공익근무요원이기 때문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더라면 어땠을까? 근무지를 옮겨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내 머리에 하얀 서리를 내리게 했고 지금은 그 서리들을 세기에도 조금은 벅찰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래도 꽤 많은 것을 배웠다. 인내심이라 하기도 좀 표현이 충분치 않고 이해심, 배려심이라 하긴 쑥쓰럽고 뭐 그런 것이다. 잠자리에서까지 나를 괴롭힌 것들이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하게 됐다.  그 상대가 마구 날 부리는 상사이든 대뜸 화를 내는 민원인이 되었든 말이다. 일이커지는 걸 막기 위한 임시방편일 지라도 이런 태도는 여기가 아니면 쉽게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들 전부가 배부른 돼지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힘들게 철책선 앞에서 소총 하나로 나라를 지키고 있을 동년배 장병이 있을 테니 말이다. 설령 내 생각이 배부른 돼지의 생각이 되었을 지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우리끼리 농담삼아 하는 말이지만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동네를 지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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