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는 단순히 ‘풀만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목적과 신념에 따라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한다. 채식은 전통적으로 종교적 신념이나 건강을 위해 행해졌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새로운 이유로 채식을 외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하나는 동물에 대한 가학행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비좁고 더러운 사육장에서 항생제를 남용해 가축을 기르고 잡아먹는 행위가 생명의 가치를 퇴색시킨다고 비판한다. 또 다른 하나는 육식문화의 비효율성과 생태파괴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1인분의 쇠고기와 우유 한 잔을 얻기 위해서는 22인분의 곡식과 2천L의 물이 소비되며, 1.5평의 숲이 베어져 방목장으로 탈바꿈한다. 이들은 채식주의가 확산되는 것만으로 인류의 기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채식을 시작하는 계기와 형태는 저마다 달라도 이들의 지향점은 결국 방향을 같이한다. 서로 다른 입구로 들어섰지만, 그들이 도착하는 방은 결국 ‘채식주의’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지난 24~25일 곽정은(교육·07)씨와 이태경(인문학부·08)씨는 이틀간의 채식체험에 참여했다. 비채식주의자의 입장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껴보자는 의도로 진행된 체험이다. 이번 체험의 채식범위는 모든 육류를 먹지 않고 동물의 알과 유제품은 가능한 한 피하는 ‘베건 지향적 채식’이었다. 채식체험을 마친 두 사람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 이틀간 주로 무엇을 먹었나?
곽정은씨(아래 곽) : 아침에는 두유를 마셨고, 점심은 학교식당에서 볶음밥의 치즈를 빼달라고 요청하는 식으로 해결했다. 저녁에는 고기가 섞이지 않은 샐러드를 먹었다. 간식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가끔 과일을 먹었다.
이태경씨(아래 이) : 집에서는 된장찌개, 나물, 콩 등을 반찬삼아 먹었다. 하지만 밖에서는 사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집에서 옥수수를 싸와 배를 채우기도 했다. 음료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커피나 녹차 등을 마셨다.


▶ 채식습관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나?
곽 : 힘들 것 같다.  채식주의자를 고려한 음식점이 너무 없다. 일일이 식재료를 따지면서 주문하기란 현실적으로 너무 불편하다.
이 : 어렵다. (채식주의자에게) 외식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만들어먹을 경우에도 많은 제한이 따른다. 채식에 가까운 음식조차 육수나 젓갈 같은 육식 재료가 일부 섞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며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없다고 답답해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채식이 일반화된 몇몇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한 한국의 채식환경을 보여주는 일례다.


  우리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는 배려 받지 못하는 소수자다.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채식모임’에 따르면 2008년 8월 기준 채식메뉴를 갖춘 서울시내 음식점의 수는 37곳에 불과하다. 이 땅에서 ‘베건’으로 살아가기에는 아직 버거운 현실이다.

 김서홍 기자 l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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