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감사·허술한 규정이 실험비 남용의 주원인

같은 계열 타과생보다 등록금을 더 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실험실습비(아래 실험비)를 추가로 내는 학과생들이다. 문헌정보학과와 심리학과의 등록금은 인문계열의 등록금 356만8천원보다 14만1천원 더 많은 370만9천원이다. 뿐만 아니라 이과대, 공과대, 음악대, 생과대, 간호대와 체육교육학과, 스포츠레저학과, 치의예과 학생들은 매 학기 약 10~20만원의 실험비를 납부하고 있다. 사회학과의 경우 예외적으로 전공이 확정된 직후 학기에만 11만8천400원의 실험비를 낸다.

국어국문과와 문헌정보학과의 등록금, 같은 계열이지만 납부 금액의 차이가 크다.

하지만 실험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학생은 많지 않다. 학교 측이 등록금 세부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강사료, 실험비 등을 한 데 묶어 ‘등록금’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등록금 고지서를 봐도 얼마의 실험비를 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기획실 예산조정부 이근호 과장은 “등록금에 포함되는 세부 항목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실험비 사용 및 배분에 대한 내역은 올해 초 중앙운영위원회 학생들에게 공개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실험비가 등록금과 별도 항목으로 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비 지출원이 특별히 늘지 않아도 등록금과 같은 인상률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

실험비의 불분명한 사용처

실험비의 용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지난 2007년 7월 도입된 ‘실험비 예산회계에 관한 규정’에서는 실험비의 용도를 △실험·실습 △답사 및 발굴 △견학 △전시회, 공연, 특강 △실험·실습과목 운영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실험·실습과목 운영비에는 재료비, 기자재 구입비, 인건비, 에너지 사용료 등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도시공학부와 주거환경학과, 생활디자인학과 등의 설계 및 실습수업에서 사용되는 재료 구입비용은 학생 부담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건축학과의 ‘기초건축설계’와 같이 모형 제작이 교과과정에 포함된 경우에는 한 학기 20만원에 가까운 재료비를 지출하기도 한다. 홍현화(건축·07)씨는 “학과에서 개인당 4만원씩 설계수업 재료비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ㅇ아무개(생디·07)씨는 “학과의 특성상 재료비로 최고 백만원 이상을 지출할 때도 있어 학생들의 부담이 크다”며 “실험비가 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현장 답사가 필수적인 강의 역시 학생 1인당 10~12만원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비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문헌정보학과와 심리학과, 그리고 컴퓨터과학과는 컴퓨터실습실 관리와 소프트웨어 이용 및 복사비 등이 실험비의 주요 사용처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학생 1인당 10만원이 넘는 실험비를 부담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컴퓨터과학과의 경우 지난 2007년까지만 해도 컴퓨터실습실조차 없었다. 공과대 학생회장 김민아(생명·05)씨는 “실습실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실험비가 청구돼 왔다”며 “지난해까지는 공간부족을 이유로 실습실 구축이 미뤄져 실습에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일정한 잣대없는 예산 책정

예산 편성도 주먹구구식이다. 실험비의 예산은 각 단과대마다 정한 실험비 단가에 재학생 수를 곱해 산출한다. 이때 단가는 단과대의 요청에 따라 책정된다. 이처럼 학년별, 학과별로 차등을 두지 않고 일괄적으로 부과돼 실험실습이 포함된 수업을 수강하지 않는 학생도 실험비를 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공과대 내의 다른 학과들에 비해 실험·실습과목이 적은 정보산업공학과, 컴퓨터과학과의 경우에도 공과대의 타 학과들과 동일한 금액의 실험비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같은 명목의 실험비가 큰 폭의 단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컴퓨터실습실 사용 명목으로 문헌정보학과는 10만원이 넘는 실험비를 책정한 반면 상경대는 2만원의 전산실습비만을 부과하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원주캠에서도 사회과학부와 경영학부에 각각 5만원, 15만원의 실험비를 부과한다. 그러나 컴퓨터실습실을 이용하지만 실험비를 청구하지 않는 학과도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원주캠 총학생회장 이기인(정경경제·03)씨는 “이 문제가 학내에서 크게 논란이 된 적 있다”며 “학교 측에 이에 대한 자세한 내역 공개를 요구했으나 구체적인 공개를 꺼렸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했던 회계 감사

이처럼 실험비의 예산, 집행, 회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실험비에 대한 감사가 단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의 요구로 지난 2007년 처음으로 실험비 감사가 실시됐지만 ‘솜방망이 감사’에 불과했다. 감사를 통해 문제점이 많이 지적됐지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2007년까지만 해도 학칙에 실험비 운용에 대한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행정부서 내부의 간단한 안내 사항이 전부였기 때문에 즉각적인 규제나 시정조치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총학생회장 성치훈(토목·05)씨는 “실험비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시행된 지난해 감사는 유명무실한 것”이라며 “올해 재감사 및 규정 강화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기획실 예산조정부 정정래 부장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매년 감사를 실시할 순 없다”며 “2년에 한 번씩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성씨는 “현재 규정은 허술한 점이 많다”며 “규정 강화를 통해 실험비 남용에 대해 구체적인 징계방안이 마련된 후 감사가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정 기자 shinewayj@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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