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밥 못먹는 그들의 고민을 들여다보다

 

  얼마 전부터 채식을 시작한 우리대학교 학생 A씨는 요즘 학생식당을 이용하는 데 큰 불편함을 겪고 있다. 채식주의자를 고려한 메뉴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육개장, 일식돈까스, 소세지 오므라이스 등 각종 육류 중심의 음식들이 즐비한 식단표를 본 후 A씨는 식당 밖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또 다른 채식주의자인 학생 B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B씨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식당을 들렀다. 마땅히 먹을 음식이 없어 고민 끝에 결국 비빔밥을 선택했다. 재료표기는 명확히 돼있지 않고, 진열된 음식샘플을 보니 계란만 빼면 될 것 같아 비빔밥을 시켰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비빔밥 속에는 잘게 다져진 고기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B씨도 점심을 먹지 못한 채 식당 밖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최근 들어 광우병, 조류독감 파동 등이 논란이 되면서 채식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채식과 관련된 홈페이지의 방문자수가 급증하는가 하면 채식관련 모임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대학 내에서도 채식을 향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0일 우리대학교 신촌캠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 앞에서 한국채식연합의 주최로 열린 채식요리 무료시식회에서는 약 200여명분의 음식이 1시간 만에 동이 나기도 했다. 이처럼 채식주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이 시점에 과연 음식을 제공하는 학생식당의 식단은 어떠할까.

누군가는 ‘입’도 대지 못한다면

  감자탕, 햄볶음밥, 짜장면, 설렁탕, 치즈함박스테이크 ……. 지난 25일 우리대학교 신촌캠 학생식당의 메뉴다. 이 메뉴들 중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단 한 가지도 없다. 과거에 약 2주간 채식을 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아무개씨는 "갑자기 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 채식을 하게 됐는데 식당을 가도 정말 먹을 게 없더라"며 "볶음밥 같은 경우에는 들어있는 고기를 골라내고 먹기도 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말했다. 하지만 당장에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를 따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게 학생식당 측의 입장이다. 우리대학교 신촌캠 학생식당 권인영 지점장은 "다수의 학생들이 육류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고정고객확보를 위해 소수의 의견을 식단에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앞선 가상의 사례 B씨와 같이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식단의 재료표기가 명확하게 돼있지 않다는 점도 큰 어려움이다. 이에 대해 권 지점장은 "재료표기를 다 할 경우 메뉴가 난해해질 수도 있어 주재료 중심으로 표기를 한다"고 말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식당

  원주캠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연세프라자의 9월 넷째주 식단을 보면 월요일은 참치오므라이스와 닭, 꼬치국. 수요일은 해물 완자전. 목요일은 치즈 함박 스테이크로 채식주의자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식당'이 될 수 밖에 없다. 작년 여름부터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온 원주캠 국제교육원 Anna Helane Winchester 강사는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신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끼니를 해결한다. 그는 "채식식단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식단을 바꾸고 나니 식당을 이용할 때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세프라자 학생식당 윤정미 영양사는 "많은 학생들이 육식위주의 식단을 원한다"며 "소수의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식단을 따로 마련하는 것은 식당 수입상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채식식단을 따로 마련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온전한’ 식사를 위해

  한편, 서울대와 동국대의 학생식당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식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매주 수요일 주기적으로 채식식단을 내놓고 있으며 동국대에서도 지난 2005년부터 완전 채식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상지대 생활협동조합에서도 유기농 식단을 제공한다. 이에 대해 신촌캠 권 지점장은 “학생들의 요구가 많아진다면 이벤트성으로 채식 식단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며 “그것이 호응이 좋다면 정기적으로 식단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보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채식’이라는 것은 음식에 대한 개인의 취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신념’이 될 수도 있으며 ‘라이프스타일’일수도 있다. 채식주의의 영어 표현 ‘베지테리어니즘(vegetarianism)’의 어원인 ‘베지투스(vegetus)’. 이는 ‘건전한’, ‘건강한’, ‘온전한’, ‘활기찬’을 뜻하는 라틴어다. 온전하고 활기 있는 식사, 그것이 채식주의자들이 지향하는 바다. 그들이 식탁에서 '온전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글 이건주, 박소영 기자 thdud0919@
사진 김가람 기자 super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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