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국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뿌리 내린 이들의 후손이 뛰어난 문학 작품을 발표해 오고 있다. ‘민족’이란 관점에서 이들은 한국인이지만 이들의 작품은 이들이 태어난 곳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 그 나라의 언어로 쓰였다. 이런 작품들은 한국문학이나 외국문학 어느 쪽에도 분명히 속하지 않고 둘 사이의 ‘경계’에 존재한다. ‘디아스포라 문학’에는 ‘경계’에 있는 자들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독특한 문학적 감수성과 문제의식이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란?

  ‘디아스포라(Diaspora)’란 말은 그리스어로 ‘흩어지다’란 뜻이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세계 각지를 떠돌아야 했던 ‘이산(離散) 유대인’을 가리키는데 사용됐다. 근래에는 한 민족 집단이 특정한 이유로 그들의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이나 국가로 흩어지게 된 현상 또는 그런 민족 집단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도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이후 일본의 수탈과 강점기를 거치며 살 곳을 찾아, 또는 징병이나 징용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만주, 연해주, 일본 등으로 떠났다. 해방 이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 등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현재 외국에 거주하는 교민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에 걸쳐있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본래 살던 땅을 떠난 이들과 그 후손이 쓴 문학작품들을 이르는 말이다. 디아스포라 문학 초기에는 상실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려진다. 일제 강점기에 고국을 떠나온 이들의  경우에는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이 드러나기도 한다. 디아스포라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이민 1.5세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저자 정은경씨는 “1세대에 비해, 그 이후의 세대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의 기원은 물론 이산의 원인 혹은 동기로부터도 소외된 ‘진정한 의미’에서의 디아스포라를 살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1.5세대 이후부터는 ‘디아스포라’라는 특수한 고민과 함께 현실 사회나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문제와 같은 문학의 보편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디아스포라란 특수성을 넘어서

  미국 이민 1.5세대 작가인 이창래는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과 미국 내 소수민족이란 특수성을 보편적인 문제로 확대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끈다. 헤밍웨이 문학상 등 미국 문단의 권위 있는 상들을 여러 차례 수상한 『영원한 이방인(원제: Native Speaker)』에서 이창래는 한국인 이민 1.5세인 주인공 헨리 박이 ‘자신’이 돼가는 과정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물론 이 작품이 찬사를 받은 데는 글을 써내는 작가의 역량 외에도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로 이뤄진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 문제가 보편적인 문제로 여겨진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창래의 작품은 ‘자기 정체성 탐구’라는 문학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면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으로서도, 보편적인 문학으로서도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재일교포 3세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 가볍고 재미있는 필치로 작품을 이끌어가면서도 재일조선인이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반영된 소설 『GO』에서 주인공 스기하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 이제는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갈거야” ‘재일조선인’이란 이름이 아닌 ‘나’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일본 사회에 퍼져 있는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해방된 나’는 재일조선인만이 아닌 자신을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나’가 되길 갈망하는 젊은이들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다.

  러시아의 한인 3세 작가 아나톨리 김은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자신의 문학세계를 높게 구축한 작가다. 아나톨리 김의 작품은 현실세계의 질서가 배제된 구성을 통해 그만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의 첫 장편 『다람쥐』는 인간 세계와 동물 세계가 둔갑이나 변화로 인해 교차되는 공상의 세계를 펼친다. 소설 속의 다람쥐가 인간이 뒤기 위해 시도하는 동족 살해는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과 집단 자살의 본성을 풍자한다. 아나톨리 김은 “문학이 인간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작품은 디아스포라로서의 특수성을 빚어내는 장소라기보다는 인류적 차원의 문제를 고민하는 장소인 것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가능성

  게오르크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소설을 “현대의 문제적 개인이 본래의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나서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 찬, 자기인식에로의 여정을 형상화 하고 있는 형식”이라 불렀다. 여기서 ‘문제적 개인’이란 주인공을 뜻한다. 디아스포라 문학 역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문학성을 지닌다.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발달은 흔히 말하는 세계화를 진행하는 원동력이다. 이는 국가 간 민족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해 어떠한 국가도 단일민족국가로 존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문학 역시 더 이상 단일 민족성이란 개념, 또는 ‘우리나라 것’과 ‘다른 나라 것’으로 뚜렷이 구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경희대학교 국문과 김종회 교수는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은 한국적 사고가 아닌 경계적 사고로 이뤄져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민족과 국가, 타인의 경계에 선 ‘디아스포라 문학’은 앞으로 문학이 나아갈 길을 예상하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글 박영일 기자 pyi0407@
일러스트레이션 남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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