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주최로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심포지엄 열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평화로운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비단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이론 중 현실주의적인 시선으로 동북아 지역을 바라본다면 지금의 평화는 ‘공포의 균형’이다. 겉으로는 평화가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쟁의 위험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역사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실현될지 많은 사람들이 의심한다. 독도문제, 동북공정 등 많은 문제들이 동북아에 평화가 찾아오는 길을 험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7월 14일 일본 정부는 오는 2012년부터 전면 사용되는 새 일본 중학교 사회과목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내용을 담기로 결정했다. 이에 반발해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14일부터 다양한 단체들이 일본 정부에 항의하는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국가보훈 8개 단체 제주도지부 회원들이 재제주일본국총영사관 앞 도로에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캐리커쳐 화형식을 가졌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본의 주장에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지난 16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다시 보는 헌법과 평화국기 만들기’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참여연대’, ‘평화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헌법의 내용을 재고하면서 동북아 평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화는 헌법 속에 존재하는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석태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된 첫번째 토론의 주제는 ‘한일 헌법 평화주의 다시보기’였다. 헌법에 규정되었을 뿐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평화주의는 실질적인 실천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헌법 차원에서의 평화 정착을 이뤄야한다는 기치 아래 한국과 일본의 대표들이 나와 발표를 시작했다.

‘허용하지 말라! 헌법 개악/시민 연락회’의 창립자인 다카다 켄씨는 ‘전쟁 철폐를 위한 글로벌 9조 캠페인’을 소개했다. 켄씨는 “글로벌 9조 캠페인은 최근 개헌 문제에 봉착한 일본 헌법 9조를 살리고 실현하려는 노력이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일본의 헌법 9조는 모든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 및 기타 전력의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두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아시아인들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캠페인에서는 나아가 세계 모든 국가들이 평화 헌법이나 법률을 채택하도록 돕고, 평화의 문화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켄씨는 “여론 동향이 9조를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이를 위해 한일민중의 연대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인 이정희 변호사가 한국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과 현실과제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한국 헌법 5조*의 내용을 소개하며 “아직 평화주의 원칙은 현실의 규범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주의 원칙이 현실에서의 규범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 원칙으로 현실을 다시 설명하려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연구가 더 활발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시아에 비군사 질서를 구축하다”

평화를 위한 조건으로 군비축소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군비는 각국의 안보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쉽게 합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두번째 토론회는 ‘동북아 군비경쟁과 평화 헌법’이라는 주제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피스보트’ 가와사키 아키라 대표는 동아시아의 구체적인 군비축소의 방안으로 △6자회담의 발전을 통한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설치 △동아시아의 기업 및 경제섹터가 군비경쟁에 가담하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메커니즘 △지역 각국 시민사회차원의 비군사 국제협력 등을 제안했다.
그는 이어 “미소냉전 종결에서는 서구의 반핵평화운동과 동구의 인권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동북아시아 탈냉전에 있어서도 일본의 평화운동과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중국의 시민사회와 교류하면서 대만, 홍콩, 아세안, 호주 그리고 북미 시민운동과의 연계활동을 강화해야함을 덧붙였다.

‘평화 네트워크’의 정욱식 대표는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과 군비축소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군사비 총액이 전 세계 군사비의 70%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은 동북아 군비경쟁을 잘 보여준다. 정 대표는 “군비경쟁이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심해지고 있으며 그것이 안보딜레마에 의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보딜레마란 자신의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치가 상대방과의 마찰을 일으켜 자신의 안보를 오히려 위태롭게 하는 상황을 말한다”고 말했다. 상대국을 믿지 못해 점점 군사비를 늘리게 되고, 결국 동북아의 전체적인 군비경쟁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한편 정 대표는 군비축소를 위한 제안으로 △동북아 평화 안보체제를 위한 아이디어 창출 △한반도 비핵화의 동북아 비핵지대로의 확대 △군사동맹의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로의 점진적인 대체 △동북아 평화배당기금 창설 등을 제안했다.

평화국가 만들기를 위한 제안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노력으로 ‘참여연대 평화 군축센터(아래 군축센터)’의 ‘평화국가 만들기’ 제안이 있다. 군축센터의 구갑우 소장은 “‘평화국가 만들기’는 평화국가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담론과 결합된 새로운 국가 만들기다”며 “미리 군비축소를 하는 것과 같은 비도발적 방위, 방어적 방위를 통해 동아시아 평화네트워크를 건설하며 최종적으로 지구적 차원의 평화국가 연합을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평화국가 만들기’의 내용을 설명했다.
물론 ‘동북아 평화국가 만들기’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평화국가 만들기’가 현실적이 정책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제거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동북아의 평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해결 과제들이 끊임없이 담론화돼야 할 것이다.

* 한국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은 전문의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제5조 제1항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제2항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로 표현된다. 

글 최명헌 기자 futurewalker@
사진 김가람 기자 super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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