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영화의 무서운 장면은 관객의 무더위를 잊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남아름
  보험회사 직원 A, 처음 들어보는 벨소리로 휴대전화가 울린다.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3일 뒤의 자신,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누군가 장난 친 거라 생각한다. 그로부터 3일 뒤, A는 고객 B가 고의로 사고를 내 보험금을 받으려는 것 같단 생각에 고객의 집을 조사해보기로 한다. B의 집에 들어선 순간, A는 2층 계단에서 B가 거꾸로 기어 내려오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A는 정신없이 도망쳤지만 출구를 찾지 못하고 어떤 방으로 들어간다. 그 방에서 A를 맞이한 것은 텔레비전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는 B였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A가 겪은 일이 모두 ‘공포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건이란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공포영화는 매 해 빠지지 않고 여름 극장가를 장식한다. 화려한 액션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 등 대작 영화들이 즐비한 여름이지만, 공포영화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하다. 여름 극장가에서 빠지면 섭섭한 공포영화,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공포영화, 다시 보면 과학영화

 공포영화는 유령, 살인마 등이 등장해 관객에게 공포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가리킨다. 공포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주인공과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쫓고 쫓기는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하지만 유령이나 살인마로부터 도망친다. 이는 공포영화에서 항상 나오는 상황이지만 이 뒤에는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다.

 영화 『검은집(2007)』의 주인공은 살인마가 휘두르는 칼에 상처를 입어도 끄떡없다. 실제로 그런 상처를 입는다면 움직이는 것도 힘들지만 영화 주인공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빠르게 달리곤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영화 속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는 뇌에서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엔돌핀(endorphin)’이 그런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로, 이는 출산을 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등, 한계까지 치닫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다량으로 분비된다. 신경전달물질은 고통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항스트레스 물질이다. 공포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이런 신경전달물질 덕에 심하게 다쳐도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다.

 공포영화는 더위로 생긴 불쾌감을 잊어버릴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우리는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소름이 돋고 등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는 신체가 추위를 느낄 때 나타나는 반응과 닮았다. 몸 밖의 온도가 낮아지면 사람은 추위를 느낀다. 이 때 뇌의 시상하부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근육을 수축해 열을 낸다.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는 시상하부가 아닌 자율신경계가 위와 비슷한 반응을 일으킨다. 공포감을 느낀 사람의 근육과 땀샘은 수축하고 땀샘에서는 땀이 나온다. 이 땀이 식으면서 몸의 열을 가져가기 때문에 체온은 낮아진다. 공포영화를 보고 난 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유 있는 처녀귀신

 서양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귀신은 아마도 검은 망토를 두르고 관 속에서 일어서는 드라큘라 백작일 것이다. 한 편, 한국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귀신은 단연코 흰 소복을 차려입은 처녀귀신이다. 드라큘라는 ‘악’한 존재로서 ‘선’한 주인공이 물리쳐야 마땅한 존재다. 그러나 드라큘라처럼 처녀귀신을 악한 존재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 처녀귀신은 ‘한’맺힌 귀신으로,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그녀의 원통한 죽음에 관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다 같은 공포영화라고 하더라도 각 나라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 

 백문임 교수(문과대? 국문)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공포영화는 공통적으로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고 이들은 산 사람과 공존한다’는 상상력에 기반한다”며 “이런 귀신들은 산 사람들과 소통하며, 산 사람들 역시 그들에 대해 단순한 공포만이 아닌 어떤 연민과 공감의 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한다. 서양 공포영화가 ‘선과 악’의 분명한 대립을 보여준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공포영화에는 ‘귀신이 돌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인과응보’적 사상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화에서 처녀귀신에게 죽는 인물을 본 관객은 그 인물이 이유 없이 죽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한국 공포영화는 한을 품은 귀신이 복수를 한다는 전통적인 서사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백 교수는 “최근 공포영화는 귀신이 경험했던 고통과 같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경험하도록 만드는 서사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귀신이 경험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하기 위해 비디오, 핸드폰, 인터넷 등의 의사소통 기술이 활용된다. 『신데렐라(2006)』에서는 ‘성형수술’이 인물들의 죽음에 관여하고, 『아랑(2006)』에서는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스크린 속의 ‘나’

  초자연적인 낯선 존재로부터 오는 공포와 끔찍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찾는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공포영화를 보게 하는 것일까? 흔히 오늘날 사회를 ‘무한경쟁사회’라 부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약점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공포영화 속에서는 무언가에 쫓기며 고통 받는 약한  인간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목숨을 위협 당하는 공포영화 주인공 또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원귀에게 공감하고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크린에 비친 이 약한 인간 속에서 그동안 숨겨놓았던 ‘자신’과 마주하는지도 모른다.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스릴과 같은 자극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등장인물을 통해 지치고 약한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 또한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더위 때문에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 여름밤, 가끔은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 한 편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시간 동안 무더위를 잠시 잊고, 숨죽이고 있던 자신에게 격려 한 마디를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