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평가결과 공개는 무리… 학교, 교수, 학생 간 소통 선행돼야

대학가에 강의평가 공개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서울대 총학생회가 자체적으로 강의평가를 시행하고 이를 공개한다고 해 이슈가 됐고, 우리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는 이미 강의평가를 공개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대학에서도 강의평가 공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처음으로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한 동국대학교의 교무부 이용택 팀원은 “강의평가 공개는 수업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학생들은 강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긍정적이다”라며 강의평가 공개의 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대학교는 학생들이 강의평가 결과 공개를 요구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별다른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교수사회에서도 아직 강의평가 공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평의회 의장 최중길 교수(이과대·물리화학)는 “강의평가 공개에 대해 논의된 바가 전혀 없어 찬성 반대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총학생회(아래 총학)가 매년 강의평가 공개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이를 위한 학생과 학교, 그리고 교수간의 논의는 물꼬조차 트지 못한 상태다.

책임감 없이 평가되는 강의평가

강의평가 공개 요구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우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강의평가를 빨리 하려고 한 번호로 모두 체크하는 학생도 있다”는 팽한나(작업치료·07)씨의 말처럼 학생들이 평가한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견우(법과대·행정법)교수는 “강의평가 공개에 찬성하지만 학생들이 책임감 있게 강의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실명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학생들의 성실하지 못한 답변 태도 때문만은 아니다. 박미진(의류·07)씨는 “성적확인을 하기 위해 강의평가를 하는데,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충하게 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평가자가 익명으로 처리되는 데다 평가 결과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강의평가를 성적확인을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생은 강의평가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성실히 평가하지 않고 교수는 이런 강의평가를 신뢰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 강의평가는 무의미하다. 그림 이옥남

모호한 강의평가 항목과 기준

현재의 강의평가 항목과 평가 방법으로는 강의평가 공개를 요구하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대학교 강의평가 문항은 총 13개이고 그 중 5개 문항은 단과대 특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차이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교수의 교수방법이 본 강좌에 적절하였다’, ‘교수의 강의준비가 철저하였다’ 등으로 단과대의 특성에 부합하는 질문이 없다. 또 객관식 문항을 5점 척도로 답변하는 방식으로는 구체적인 평가가 어렵다. 주관식 문항 역시 강의의 ‘좋았던 점’과 ‘개선할 점’ 등으로 추상적이다.

강의평가의 문항이 강의의 수준이나 강의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오홍석(경영대·매니지먼트)교수는 “교수마다 역할이 다르고, 강의, 연구, 행정 등에서 능력 차이가 있는데 강의만으로 교수가 평가되고 인식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평가 항목과 공개 수위를 단계적으로 검토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과제를 줄이고 강의를 느슨하게 운영하는 교수를 좋게 평가할 위험도 존재한다.

총학의 강의평가 공개, 실효성은?

우리대학교는 강의평가 성적이 좋은 교수에게 ‘우수강의 교수상’을 시상한다. 하지만 평가 성적이 좋지 않은 강의에 대한 보완책은 전무한 상태여서 강의평가를 통해 수업의 질이 향상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이번 총학이 추진하고 있는 강의평가 공개도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총학은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강의평가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 공개된 내용을 교수에게도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연세춘추」의 웹진 ‘연두’와  ‘연세웰컴’ 등 우리대학교 관련 홈페이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강의평가와 차별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학교에서 시행하는 강의평가와 중복돼 과연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것이며, 이를 학교 측에서 인정할지 여부도 여전히 미지수다. 이에 부총학생회장 조을선(정외·05)씨는 “참여율이 낮더라도, 강의평가 공개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회성에 그칠 수 있는 강의평가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측과의 협의를 통해 공식적인 강의평가 공개를 얻어내야 한다. 총학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강의평가의 반응을 본 후 학교 측과의 협의를 시행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강의평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이제 시작 단계여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 총학의 임기 내에 학교 측과의 본격적인 협의를 시도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상황이다.

학생들의 강의평가 공개 요구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곧바로 공개를 시도하기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학교, 교수, 학생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김윤정 기자  shinewayj@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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