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큰 별이 영원히 잠들었다. 우리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낸 ‘한국 문학의 어머니’ 소설가 박경리(본명 박금이) 선생이 지난 5일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경리 선생은 우리대학교와 인연이 깊다. 지난 1991년부터 1992년까지 1년 동안 우리대학교 원주캠에서 강의를 했으며 1997년에는 제3회 용재 석좌교수상을 수상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원주에서 30년 가까이 창작활동을 하며 대하소설 『토지』를 완성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 그의 추모식 및 노제(路祭)가 지난 8일 원주시 단구동 토지문학공원과 우리대학교 원주캠이 위치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인 토지문화관장 김영주씨와 김영주씨의 남편인 소설가 김지하씨를 비롯해 인예대학장 윤덕진 교수(인예대·고전문학),  김명복 교수(인예대·영시), 정현기 교수(퇴임·현대문학), 김기열 원주시장, 원주문인협회 권순형 회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은 “한참 살지 않은 곳인데도 마치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실 것 같다”며 “이 곳이 어머니가 가장 많은 일을 한 곳”이라고 말해 원주시 단구동 자택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그는 추모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도 어머니를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추모식에서 사회를 맡은 토지문학공원 관리운영담당자인 고창영 시인은 “선생님을 보내야 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서운해서 토지문학공원과 토지문화관  텃밭의 흙을 담아 장지에 뿌릴 계획이다”고 헌토의 취지를 전했다.

평소 박경리 선생님을 모시고 그 뜻을 따랐던 김명복 교수는 추모식 헌화에서 “항상 생명에 대해 말씀하시고 이제 저희 곁을 떠나 마음의 눈으로 남으신 선생님”이라며 고인을 떠나보냈다. 김 교수는 추모식이 끝난 후 “3월 중순 경에 본 선생님의 모습이 마지막 이었다”며 “1993년 단구동 집에서 선생님을 도와드리며 기계를 싫어하시던 선생님을 대신해 팩스로 토지 5부 원고를 문화일보에 보냈던 기억이 스쳐지나 간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또한 윤덕진 교수는 통영을 향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약 1시간 동안의 추모식을 마치고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에서 노제가 거행됐다. 토지문화관 창작실 앞뜰에서 노제를 마친 뒤 박경리 선생의 유해는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떠나 미륵산 기슭에 안장됐다.

 

이채현 기자 cheahyunv@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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