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꼭 취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인터넷 기사를 찾아 추모식이 열리는 원주 토지문학공원으로 향했다. 학교를 나서는 길에 우연히 학교 정문 앞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게 됐다. ‘당신의 이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연세대학교 교직원·학생 일동’. 정말 그렇게 믿었다.  교직원과 학생 모두 이 날 하루만큼은 선생님의 영혼을 생각하며 엄숙했기를 말이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취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난 너무 부끄러웠다. 100여명이 넘게 온 추모식에서 우리대학교 구성원들을 찾기 힘들었다. 어렵게 교수님 2분을 뵙고 한 교수님과 인터뷰를 한 게 전부였다. 그런 씁쓸한 감정을 뒤로하고 노제를 위해 원주 토지문화관으로 이동할 때 서울의 한 대학의 학생들이 같은 옷을 입고 추모식에 온 것을 보게 됐다. 마음이 한 구석이 텅빈 느낌이었다.

추모식과 노제를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와 친구들에게 ‘혹시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마지막까지 계셨던 곳이 어딘지 알아?’라고 물었다. 하지만 우리대학교 바로 옆이 토지문화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침에 봤던 현수막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던 학교는 잊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우리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문학의 어머니신 그 분은 학교에서 버스로 5분 거리인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여생을 보내셨으며, 불과 15분 거리에는 선생님 집이 보존돼 있는 토지문학공원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취재2부 이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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