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대 학생이라면 반방을 찾아가기 위한 필수코스, 일명 ‘고학번 계단’에 그려진 개성있는 벽화들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갖가지 캐릭터와 그림, 낙서들이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뛰쳐나와 계단 벽면에서 뛰놀며 오는 이를 맞이한다.

▲ 문과대 '사고7반'이 벽화를 그리고 있다

 문과대학 벽화는 지난 2005년 문과대 학생회가 주최한 해오름제 행사의 일부로 처음 기획됐다. 종합관과 외솔관 사이 반방 건물로 연결된 어둡고 칙칙한 계단을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벽화가 조금씩 추가돼 지금은 어엿한 하나의 표현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계단에 처음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눈동자 그림은 문과대학 ‘사고7반’(구 사학반) 작품이다. 사고7반에서는 학기 초 신입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벽화는 지난 2006년 기획된 예비학교 프로그램 중 일부다.

 사고7반의 박석준(영문·06)씨는 “문과대에서 지원을 받거나 예학 비용으로 페인트를 구매해 그렸다”며 “반방 입구에 독특한 그림을 그려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함께 참여했던 변정섭(심리·06)씨는 “선배들과 함께 주제를 정하고 땀 흘리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의미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덩그러니 방치됐을지 모를 틈새 공간이 학생들의 젊음이 표출되는 하나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단순하게 보이는 문과대학 벽화에는 그린 이들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색색의 그림들은 벽이라는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참여자들의 소통을 도모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노력하는 등의 제작과정 또한 작품의 한 요소가 된다. 문과대학의 조촐한 벽화는 만드는 이들의 대화가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사람 가까이에 위치하는 공공미술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 치대미술부과 이화여자대학교 가는 길에 있는 굴다리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방면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굴다리에는 젊음의 거리로 행인들을 인도하는 듯한 벽화(아래 신촌벽화)가 그려져 있다. 어두운 굴다리를 조명처럼 밝혀주는 신촌벽화는 우리대학교 치과대학 미술부(아래 치대 미술부) 학생들의 작품이다. 그림 곁에 쓰인 학생들의 학번과 이름은 지나칠 때마다 눈에 들어와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조명등 몇 개 달랑 걸린 으슥한 굴다리가 맘에 걸려 벽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는 이들. 치대 미술부의 회장인 강병화(치의학·05)씨는 “신촌을 젊음의 공간답게 만들어 보고싶어 시작했다”며 “네온사인만 가득한 삭막한 신촌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외된 공간을 하나의 캔버스로 ‘발견’해낸 눈이 돋보인다.

 신촌벽화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타 대학에서는 벽화작업이 까다롭기 때문에 주로 미술대학교 학생들을 고용해 높은 임금을 주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신촌 벽화는 순수하게 학생들의 의지로 기획돼 재료와 도구, 심지어는 사다리차까지 학생들의 자비로 대동했다. 시작부터 완성까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었던 셈이다.

 크기만도 엄청난 이 벽화에 학생들의 땀과 물감이 반반씩 섞여있다. 벽화와 유화의 방법적인 차이를 깨닫지 못해 실수도 많이 했고 방과 후와 주말시간도 모두 이 작업에 헌납해야 했다. 당시 병원 인턴으로 바빴던 선배들이 발 벗고 나섰고 조금씩 완성되는 그림처럼 이들의 마음도 하나로 모아졌다. 그렇게 한달 여 간의 작업을 마치고 2006년 가을, 드디어 학생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신촌벽화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아름다움을 위해 나섰다는 데에 의의를 지닌다. 그저 놓여있는 작품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매일 오가는 곳에 변화를 주어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는 삶 속의 미술이다.

 학교 안팎에서 우리가 꿈꾸는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들이 한창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주변 무엇과도 조화하지 못한 채 고고히 서있는 예술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주변생활을 반짝반짝하게 빛내 줄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곳곳에서 보는 이를 부르고 있다. 소소하게 보이지만 만든 사람들의 역동적인 소통과 노력의 흔적이 녹아 있는 미술들. 삶이 있는 공간에서 미술은 우리에게 이미 성큼 다가왔다.

글  김규진 기자 loveme@
자료사진 치대  미술부,사고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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