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 참여 그리고 만화

▲ 지난 3월 22일 열린 코믹월드에서 만화 주인공 옷을 차려입은 두 학생이 한 학생에게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소설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하고 칭찬해주시는 부모님이지만 만화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라고 화를 내신다. 만화·애니메이션(아래 만화)은 공부할 시간을 빼앗고 일순간의 흥미를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화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자.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상상력을 표현하는 만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특별하다.

 

상식을 뛰어넘는 만화

 만화의 소재는 참신하다. 지난 2004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발(약칭 시카프)’에서 관객상과 신인상을 수상했던『볼록이 이야기』는 마른 면국수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면뭉치의 뒤쪽을 누르면 앞쪽이 나오는 원리를 이용해 볼록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모두가 오목한 곳에서 볼록하게 태어난 볼록이가 반대편 볼록별로 가자 혼자 오목하게 된다는 내용은 관객들을 다시 한번 감탄하게 했다.

『볼록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의 내용 또한 판타지 소설을 뺨칠 정도로 기발하다. 애니메이션『톰과 제리』에서 제리는 톰의 귀 속으로 들어가 눈, 코, 입을 간질인다. 화가 난 톰은 제리를 잡으려 눈을 벅벅 긁다 눈에 상처만 입는다. 쥐가 고양이의 몸속을 돌아다니는 것이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화에서는 가능하다.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영화 속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만화는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런 창의성을 발휘해왔다. 우리대학교 사학과 강홍구 강사는 “극단적일 정도로 성격이 강한 캐릭터들과 비현실적인 내용이 주는 재미가 만화의 인기요소”라고 말했다.

 만화의 형식도 상상력으로 꿈틀댄다. 만화는 종이에 그림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식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샌드애니메이션’은 평소 머릿속에 떠올리는 애니메이션의 이미지와는 뭔가 다르다. 투명한 판에 고르게 거른 흙과 모래로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것조차 애니메이션의 과정이다. 샌드애니메이션은 현대미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당당히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된다. 강 강사는 “이 속에서는 그리는 행위조차 애니메이션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화 속으로 직접 풍덩

만화가 지니는 독특한 매력은 수용자의 참여가 많다는 데 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서울코믹월드’에는 만화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이들로 가득했다. 코믹월드는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창작만화, 코스프레, 일러스트 등을 선보이며 만화·애니메이션에 대한 견해도 교류하는 행사다. 행사장 안에서는 만화의 스토리를 재구성한 소설본, 만화 등장인물의 모습으로 만든 쿠션 등 참여자들이 직접 만든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소설본을 판매하고 있던 박예슬(16)양은 “등장인물 간에 좋아하는 관계를 바꾸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행사장 앞의 광장에는 만화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일반 관람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코스프레는 만화 등장인물의 옷을 만들고, 소품을 준비해서 직접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다. 이때 외형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행동과 생각까지 따라 완전히 그 등장인물이 되는 게 코스프레의 핵심이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모험』의 ‘가오나시’는 애니메이션 속 모습 그대로 광장 모퉁이에 누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이처럼 수용자가 직접 만화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이 되는 코스프레는 만화에 참여하는 수용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직접 등장인물이 되는 것을 넘어서 만화 속 상황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도 있다. 만화 속 그림이나 텍스트를 그대로 혹은 조금 변형해서 무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주인공에게 후광이 비치는 장면이나 ‘끼익끼익’ 등의 이상한 소리가 적혀있는 부분이 현실로 옮겨지기도 한다. 보통 특정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코믹월드나 지역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어딘가 어설픈 소품이나 무대효과가 오히려 보는 사람과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완벽함이 주는 엄숙함보다 미숙함이 주는 유머가 보는 사람의 배꼽을 잡게 한다.

 코믹월드와 코스프레 퍼포먼스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에는 다른 장르에 비해 수용자의 참여가 많다. 강 강사는 이를 “현실과 다른 만화 속에 담긴 판타지를 실현하고 싶어서”라고 설명한다. 공주가 되고 싶고 왕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참여를 통해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판타지를 제공하는 드라마 등의 장르보다 왜 유독 만화에서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까. 강 강사는 이어 “만화는 누구나 쉽게 접하는 장르라서 그럴 것"이라고 덧붙인다. 

 수용자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예술이다. 그렇다면 수용자에게 영감을 줘 적극적인 참여까지 이끌어내는 만화도 예술일 수 있다. 만화는 사전적인 정의를 내리기 힘들 정도로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 ‘잡서적(雜書籍)’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예술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특별한 장르라는 점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것이다.


글 양아름 기자 diddpql@

사진 박소영 기자 behappy@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