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질은 독이다.
독이 없는 것은 없다.
올바른 양이 독과 약을 결정한다.
by. 파라셀수스

백설공주는 마녀가 건넨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마녀는 그 순간을 위해 손수 독사과를 만들었지만, 사실 독사과를 따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사과 안에 이미 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과씨에는 독성물질인 청산성분(시안화물)이 들어있다. 물론 사과씨에 함유된 청산성분은 양이 매우 적어 한두 개 먹는 것은 인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과씨를 한 컵 정도 먹게 되면 인체에 청산성분이 쌓여 호흡곤란, 의식 마비 등은 물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사과씨 처럼 약한 독성을 가진 것에서부터 청산가리(시안화칼륨)나 비소처럼 맹독성을 띈 것까지, 독성이 있는 물질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독성이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독성학(Toxicology)은 과연 어떤 학문일까?

독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했다. 원시시대부터 사냥이나 전쟁을 위해 독을 쓰기 시작했고, 고대 로마에서는 정적(政敵)을 암살하는 데 독을 사용했다. 사냥이나 암살에 주로 쓰이던 독을 학문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16세기 스위스 출신의 의사 파라셀수스(Paracelsus 1493~1541)였다. 그는 “모든 물질에는 독이 있으며 독이 없는 물질은 없다. 오직, 용량만이 독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가 주장한 화학물질의 용량과 반응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독성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독성학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다. 산업 발달에 따라 화학물질 사용이 늘어나고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인체에 해를 끼치는 독성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시판됐던 임산부의 입덧 방지 약이었다. 임산부의 입덧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가 뛰어났던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복용한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낳아 판매가 금지됐다. 이 사건은 최악의 의약품 부작용 사고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도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를 계기로 약과 독을 구별하는 것은 용량의 차이라는 개념을 가진 독성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약학과 정진호 교수는 “특정 화학물질의 독성 여부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며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용량은 물질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게 쓸 수 있는 기준치를 마련하는 것이 독성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독성학에서 기준치란 물질이 인체에 해를 끼치게 되는 용량을 말한다. 독성이 아주 약한 물질이거나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기준치를 넘으면 ‘독’이 된다. 술 역시 독성은 약하지만 에탄올(또는 에틸알코올)이란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인체에 해를 입히는 기준치가 있다.

독성학자들은 특정 화학물질의 독성 기준치를 설정하고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그 물질의 독성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한다. 이런 평가는 주로 동물실험을 통해 시행되기 때문에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또한 탈리도마이드처럼 동물실험에서는 어떤 이상도 보이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동물실험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최근에는 실험동물의 개체 수를 최대한 줄이고 동물 대신 미생물이나 세포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근 식품과 의약품에 있어 생물체의 특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생명공학기술(Biotechnology)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전자변형식품과 같은 품종개량 식품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독성학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독성학의 연구 분야는 더 넓어지고 그 중요성도 커진다.

국립독성과학원 일반독성팀 한의식 연구관은 “독성학이 국가들 사이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이나 의약품 문제가 국가 사이의 갈등을 일으킬 때 독성학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독성학은 식품 안전성검사나 독성검사를 수행해 문제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독성학 연구 기반이 약하고 사회적 인식도 낮으며 전반적인 독성학 교육, 연구 환경 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국립독성과학원에서 인체유해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독성물질국가관리사업(KNTP)을 실시하는 등 독성학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늘날 독성학이 다뤄야 할 독성 분야는 매우 복잡하다. 산업의 발달로 새로운 화학물질이 만들어지고 환경오염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로 화학물질의 성분 변화는 물론 생물의 DNA 변형까지 일어났기 때문이다. 독성학은 이런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독성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위험성을 연구하기 위해 유전학, 면역학 등과 연계하고, 수많은 화학물질의 변화에 따른 독성을 예측하기 위해 컴퓨터 공학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오늘날 독성학은 여러 학문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하는 종합학문이다. 환경이 변화하는 한 독성학 연구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박영일 기자 pyi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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