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제2의 성』은 여성에 대한 총체적인 내용이 담긴 페미니즘의 기본서로 유명하다.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인 장 폴 샤르트르(Jean-Paul Sartre)와의 계약결혼으로 새로운 형태의 남녀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들로만 보부아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시대에 따른 보부아르의 변천사 일러스트레이션 남아름

『제2의 성』이 쓰여지기까지

1929년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자기만의 방』을 통해 지식 사회의 여성 차별을 의식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를 사회 전반적인 이슈로 확대시킨 것은 1949년에 발표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었다. 이 작품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총체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우연히 집필됐다. 보부아르가 자기 자신을 알고자하는 지적인 욕구에서 시작된 것이 여성 일반에 대한 시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이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은 보부아르가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작가이자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철학, 생물학, 심리학, 역사학 등을 토대로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여성을 평가해 왔는지 설명한다. 2부는 보부아르가 활동한 20세기 중반 당시 남성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있던 여성의 상황에 대한 경험을 보여준다. 이처럼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었다.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방금희 강사는 “페미니즘의 흐름에서 제1기에 해당하는 보부아르의 관점은 남녀동질론”이라며 “오늘날에도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사회적 관행들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낭만적 개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지적인 동반자, 보부아르와 샤르트르

그때 샤르트르가 이렇게 제안해 왔다. ‘2년 동안 나는 파리에서 살 수 있도록 손을 쓰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가능한 한 친밀한 생활을 하자.’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는 이처럼 샤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긴밀한 관계가 나타나있다. 보부아르는 “우리의 사랑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연의 사랑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부아르와 샤르트르는 당시로는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독창적인 남녀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관계는 두 사람이 철학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지적활동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동무와 연인』의 저자인 철학자 김영민씨는 “사르트르에게 보부아르는 육체(연인)가 아니라 귀(동무)였을 것”이라며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둘의 관계는 단지 연인이 아니라 서로의 철학과 사상을 공유하는 동반자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적 사상가였다. 실존주의는 한 개인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창작을 통해서 의미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샤르트르가 이를 철학적인 방법으로 보여준 반면 보부아르는 문학적으로 독특한 경험을 전달해주고 싶어했다. 이렇게 보부아르는 자신의 작품을 남김으로써 통해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학적 문학가, 보부아르

보부아르는 자기 자신을 작가로 규정했다. 그녀는 1943년 처녀작인 『초대받은 여자』를 시작으로 죽기 3년 전인 1983년에 발간한 『샤르트르의 카스토르에게 보낸 편지』까지 20여 권을 출간했다. 그 중 네 번째 작품인 『만다린』은 1954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콩쿠르상(Le Prix de Goncour)을 수상했다.

보부아르의 작품 중 『아름다운 영상』과 『위기의 여자』의 경우 페미니즘적인 성격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이는 소외된 여자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이상적인 여성상을 그리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학적인 측면에서 소설을 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이 두 작품은 작가가 독자에게 삶의 길을 찾아주는 것이 아닌 인식의 계기를 주려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부아르의 문학은 인생의 한 단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현실을 보여주는 참여 문학의 미학을 담고 있다. 방 강사는 “보부아르의 문학은 철학적 문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라며 “그녀의 글이 현학적으로 보이고 자전적 체험기로 평가절하 되기도 하지만 페미니즘 문학에서 자전적 성격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여성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 실존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이다. 또한 보부아르는 여러 권의 자서전을 남겼다. 그 중 보부아르의 두 번째 자서전인 『나이의 힘』은 시대를 대표한 지성인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책에서 보부아르는 말한다. “비평가들은 내가 처녀 시절에 이 세상의 처녀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어떤 부채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단지 나의 인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증명하는데 그칠 것이다.”

올해는 1908년에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보부아르는 1972년 자신의 마지막 회고록 『총결산』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내 삶의 맛을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존재하기를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어느 만큼 성공했다.” 보부아르는 프랑스 문학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페미니즘에서는 실질적으로 시조의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에게 흥미를 갖게 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고 말한 보부아르. 그녀의 철학과 작품은 21세기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조규영 기자 summit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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