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이 함께 숨을 쉬는 창작스튜디오를 말하다

그 누구보다 고독한 삶을 살았던 비운의 화가 반 고흐. 그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염원했다. 그리하여 여러 화가들을 ‘아를’에 있는 그의 집에 초대하지만 오직 폴 고갱만이 이에 화답한다. 둘은 벽을 온통 노랗게 칠한 멋진 집에서 영원한 우정을 꿈꾸며 함께 산다. 그러나 9주간의 짧은 동거를 하면서도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고갱은 “이 빌어먹을 노란색”하며 아를을 떠나고 고흐는 격분하여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다.
이렇듯 예술가들의 ‘한집 살이’는 어려워 보인다. 워낙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술가하면 보통 사람과 어울려 있는 것보다 혼자 고고히 지하골방에 틀어박혀 곰팡내를 풍기고 있는 불우한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이러한 일반인들의 편견에 맞서며 ‘희망의 증거’가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숱한 고흐와 고갱들이 모여 꿈의 아를을 만드는 ‘공동창작스튜디오’(아래 창작스튜디오)가 그것이다.

창작스튜디오, 작가들의 발디딤대

▲ 창동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고 있는 헝가리 작가 마리앤느씨
창작스튜디오에서 예술가들은 동고동락하며 작품 활동을 편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지난 1995년 처음 창작스튜디오를 만든 이후로 현재 전국에 약 50여개의 창작스튜디오가 있다.

창작스튜디오는 작가의 작품 활동 지원을 최우선으로 한다. 작가들에게 무료로 개인스튜디오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는 스튜디오의 경우 전시장도 무료로 빌려 준다.

예술가는 생계와 창작 활동 사이에서 끊임없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고달픈 직업이다. 때문에 작업실과 전시공간을 무료로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는 작가가 창작 활동에 전념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혜택 덕분에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려는 작가의 수가 해마다 늘어 경쟁률이 100대 1이 넘는 곳도 있다. 창작스튜디오의 경쟁률이 이렇게 높고 심사도 엄격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실력의 보증수표로 작용한다. 특히 경제적 기반이 약하고 예술계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신예 작가에게 창작스튜디오는 매력적인 등용문이다. 창작스튜디오가 미래를 선도할 차세대 작가의 산실인 셈이다.

끌림·어울림·열림

창작스튜디오는 작가들이 교류하는 장이다. 서울시립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기 입주 작가인 박종호씨는 “모두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작품 활동을 하는 성실파들이라 많은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살을 비비며 살다보니 다른 장르로 ‘외도’하는 일도 발생한다. 유화작가인 박씨는 입주 이후 처음으로 사진작업을 하게 됐다. ‘옆집’에 사는 사진작가의 방에 드나들다 사진에 흥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씨는 이웃사촌에게 사진과외를 받을 뿐만 아니라 값비싼 기자재를 빌리기도 한다. “제 사진기를 보더니 너무 불쌍해 보인다면서 사진기랑 몇 천만원 하는 조명기구를 챙겨 주더라고요”

한 지붕에 사는 작가들끼리 공동전시회를 열거나 공동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잠깐 ‘마실’나갔다가 죽이 맞아 함께 전시회를 여는 경우도 많다고. 같은 공간에 작업실이 있기 때문에 준비하기도 편하다.

교류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2002년에 문을 연 창동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아래 창동스튜디오)에는 매년 15명 정도의 외국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다 간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문화동반자 1만명 지원 계획’을 실시하기 때문에 아시아 작가가 특히 많다. 창동스튜디오 프로그램매니저 정재원 씨는 “한류가 가장 활발할 때 역으로 ‘아시아작가 초청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자국문화를 수출만 하는 폐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평했다.

외국작가가 많아 의사소통이 어려울 것 같지만 정씨는 “서로 어울려 지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헝가리 작가 마리앤느씨도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반복해 말했다. 대부분의 작가가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영어나 다른 외국어에 능통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서로 말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예술가는 언어를 뛰어넘는 영역을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창작스튜디오의 백미는 작가들의 작업장을 활짝 열어 보이는 ‘오픈스튜디오’ 행사다. 이때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방 곳곳에 녹아있는 삶의 흔적들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이 된다. 관람객들은 작가의 내밀한 공간을 엿보며 작가의 아우라에 흠뻑 취한다. 미술관에서 보는 박제된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방에서 살아 숨 쉬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아직 채 완성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작품을 볼 때는 작가와 비밀을 공유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내 아이처럼 그 작품이 어떻게 자랄지 기대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창동스튜디오에서 열린 오픈스튜디오전은 유목을 뜻하는 ‘노마드’를 구호로 내세웠다. 이처럼 이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작가, 다양한 장르, 그리고 감상자에게 열려있는 길을 부지런히 종횡무진하고 있다. 우리 또한 이제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작가들의 방으로 갈 때다. 

글 이효정기자 post-tina@
사진 박소영 기자 be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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