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어느덧 사랑방 창문을 타고 스며들어온다.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으려 덧대놓았던 종이를 창문에서 떼어놓으니, 봄 냄새가 방안에 가득하다.

‘봄의 소리’라는 테마를 가지고 지난 27일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3월의 ‘사랑방 음악회’.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준비한 한시간 남짓의 공연은 여주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의 향연이었다. 5개의 각가의 연주가 시작되기 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 감독인 황병기씨가 곡과 작곡가등에 대한 설명을 전한다. 곡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연주를 더욱 깊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사랑방 음악회의 매력이다. ‘대화가 있는 무대’를 지향하는 음악회답게 듣는 이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관객 수 역시 소규모로 기획됐다.

당일 공연된 곡들은 봄이 진행되는 모습을 온전히 그려낸다. 처음 연주되는 가야금 독주곡 「춘설」은 올 3월 들어 내린 봄눈을 떠오르게 한다. 무대에는 꽃모양의 불빛이 비춰져 꽃밭위에 가야금이 놓인 듯하다. 연주자가 가야금에 손을 댈 때 마다 봄 꽃 위로 때늦은 눈이 송이송이 흩어진다.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서 나는 가야금 소리는 연약한 듯하면서도 맑고 아름다웠고 금방 내린 눈이 스러져 없어지듯 여운을 남기며 잦아들었다.

‘눈’이라는 겨울기운이 가시고 본격적으로 소금(小芩)의 「봄을 여는 소리」가 이어진다. 중심악기인 소금과 가야금, 장구 그리고 신디사이져, 심벌즈가 무대 위에 올려졌는데 얼핏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신디사이져의 조용한 울림으로 곡이 시작되자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공연되어 왔다는 듯 악기들이 어울렸다. 봄의 기운이 절정에 이른 2악장에서는 악기들이 자진모리로 휘몰아치는 듯한 소리를 뱉는다. 신기하게도 소금은 가락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도 박자와 분위기로 각기 다른 모습의 봄의 문턱을 표현했다.
드디어 봄은 우리네 삶으로 들어온다. 대금(大芩)독주인 「내 고향에 봄이왔네」는 연변 작곡가의 곡으로 전통음악이 남한보다 훨씬 섬세하게 발전한 연변의 음악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대금은 굵직한 소리로 마치 피워놓은 향처럼 공연무대를 채워갔다. 떨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고음으로 올라가는 대금의 음색은 강하게 또는 약하게 부는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가지와 같았다.

봄은 이제 만발한 꽃의 향기와 함께 어디든 만연한다. 「초소의 봄」 역시 북한에서 작곡됐으며 네 대의 25현 가야금을 구성된 합주곡이다. 각 가야금은 서로 같은 가락을 연주하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화음을 이룬다. 물방울 소리같은 가야금의 음들은 새의 지저귐이 됐다가 다시 풀잎에 옷이 스치는 소리로 변했다.
마지막 곡인 남도민요 「봄노래, 메아리」는 당일 공연 중 유일한 노래였다. 소리꾼 두명이 ‘나비가 난다’는 가사에서는 빙글빙글 춤을 추었고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는 소리도 악기처럼 곡에 스며들었다. 노래의 반주를 맡은 대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의 연주는 모두 즉흥적인 것이란다. 이것을 ‘수성질한다’고 하는 데 공연마다 연주법이 달라지는 우리 음악의 형태다. 들을 때마다 변화하며 꿈틀거리는 우리 음악의 생생함은 봄의 생동감과 맞아 떨어진다.

사랑방음악회는 매달 테마를 달리해 전통음악을 공연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연주뿐만 아니라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자의 몸동작, 얼굴표정, 숨소리 추임새 하나까지도 감상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기획의도. 공연시간동안 듣는 이는 더이상 관‘객(客)’이 아니다.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의 상호 교감이 일어나는 자그마한 사랑방,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 작은 쪽문 사이로 아름다운 우리 음악이 흘러나올 것이다. 매달 셋째주 목요일(7월 제외)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김규진 기자 loveme@
자료사진 국립 국악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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