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현실에 생채기가 날 때마다 우리는 안온한 공간을 꿈꾼다. 어느 시의 구절처럼 현실을 잠시 꺼둘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기 끄고 켤 수 있는 사람살이가 있다. 바로 미국 ‘린든랩(Linden Lab)’사에서 개발한 ‘세컨드라이프’다. 세컨드라이프는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뤄진 온라인 가상세계다. 냉혹한 현실세계와 달리 이곳에서는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 이용자는 말 그대로 ‘제2의 삶’을 산다. 유명 인사들의 세미나에 참석해 교양을 쌓고 한껏 꾸민 아바타로 사교모임이나 춤 경연대회에 나가 삶을 즐긴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과 아예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가상마을에 삶의 터전을 꾸리며 직업을 갖는 등 사회·경제활동도 활발히 한다. 특히 세컨드라이프에서 번 돈은 실제로 달러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렇듯 현재 전 세계 약 1천만 명이 세컨드라이프의 주민으로서 다채로운 삶을 구성하고 있다.

기업, 세컨드라이프를 향해 쏴라

많은 오프라인 기업들이 세컨드라이프에 입주해 각종 경제활동을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은 기업 홍보다. 기업들은 다양한 오락적 요소를 가미해 고객에게 친밀하게 다가간다. 신제품을 출시해 반응을 조사하는 것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현실세계에서 시장을 조사하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위험요소도 적어 기업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IBM’처럼 기업 내의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는 수단으로 세컨드라이프를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펑크머리를 한 ‘사장님’ 아바타와 와인을 즐기며 회사의 미래에 대해 말해보는 건 어떨지.

지식은 세컨드라이프로 통한다

교육열이 대단한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세컨드라이프엔 교육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대학원은 ‘법과 여론 재판’이라는 법학 강좌를 세컨드라이프 내에 개설해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했다. 물론 MIT도 인터넷으로 강의를 무료 공개해 화제가 됐지만 학생이 교수의 강연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엔 ‘3D 채팅’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있다. 이를 이용해 영화 『금발이 너무해』에서 봤던 격렬한 토론과 ‘소크라테스식’ 질의응답이 가능하다. 화자의 목소리가 크고 빨라지면 아바타의 몸짓도 똑같이 격렬해지기 때문에 강의도 생동감이 넘친다. 다만 아바타 간의 거리에 따라 들리는 소리가 다르다니 앞자리 사수를 위한 전쟁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창조적 이용자들의 살롱

세컨드라이프 주민들은 창조적이며 능동적으로 가상 세계에 참여한다. 기본 골격을 제공하는 것은 프로그램 개발사지만 그 외 내용물은 모두 세컨드라이프 주민들에 의해 채워진다. 참여자가 직접 아이템을 디자인하고 그래픽 도구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다른 게임과 달리 이미 정해져 있는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제작된 아이템은 판매도 가능하다. 

이러한 창조적 생산성을 높이 평가해 우리대학교 청년문화원에서는 지난 1월 중고등학교 학생 10여명과 함께 세컨드라이프에서 ‘공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원에 놓인 꽃, 벤치, 건물 하나하나를 모두 학생들이 고안해 직접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김지호씨는 세컨드라이프를 "인류의 상상력과 기술의 결정체"라며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것을 현실에 직접 구현해보는 경험은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창작물에 대한 세컨드라이프 주민들의 인식이다. 서비스초기에는 주민들의 창작물을 사고 팔 때마다 린든 랩에 세금을 내야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에 격렬히 저항했다. 자유로운 창작물에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촛불시위를 하는 등 혁명을 일으켰고 결국 토지세 이외의 모든 세금이 폐지됐다.  

현재 우리는 ‘바벨탑’이 무너졌던 그 때처럼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시대를 산다. 소통과 참여 그리고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세컨드라이프가 이 시대의 하나의 해방구로서 그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이효정 기자 post-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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