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한 대학생활에 쉼표를 찍는 이들을 찾아서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 ‘취미,특기’란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을 것이다. 머릿  속에 수 만 가지 행위들을 떠올린 뒤 나오는 답은 고작 음악 감상, 아니면 독서정도다. 세월은 흘러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서도 공포증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취미, 특기’란을 간단히 그리고 재미있게 채우는 이들이 있다.

와인 향에 취한 사람들 ‘소믈리에’

보통 와인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가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들만이 즐긴다는 것이다. 『올 댓 와인』의 저자 조정용씨는 “와인이 가장 빛나는 곳은 바로 집안 부억의 식탁 위”라며 “편하게 와인을 즐기라”고 말한다. 이 말을 모토로 삼고 출발한 사람들이 있으니 고려대학교 중앙 와인 동아리인 소믈리에다. 이들은 우리나라 유일의 와인동아리다.

소믈리에는 일주일에 한번 와인에 대한 지식을 함께 배우고 한달에 한번 와인을 선정해 시음한다. 시음하는 와인은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고 실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을 택한다. 또한 연중행사로 고려대학교 와인 페스티벌과 와인부페를 주최해 대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둥글고 목이 긴 잔에 담긴 와인은 흡사 반짝거리는 보석과 같다. 잔을 한 바퀴 돌리면 코에 그 향이 흠뻑 뭍어 난다. 아름다운 매력을 가졌지만 그간 사치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쉽게 친숙해지지 못했던 와인. ‘와인쟁이’들과 함께 한층 살갑게 다가온다.

알프스를 울리는 맑은 소리 ‘알핀로제’

 

 

요들송하면 대부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꼭두각시놀이를 하며 부르는 「외로운 염소치기」라는 노래를 떠올린다. 마치 그들처럼 노래하는 사람들, 바로 연합 동아리 알핀로제다.

요들송의 매력은 맑고 즐거운 음정과 더불어 반복되는 재미난 후렴구에 있다. 이 후렴구는 주로 ‘요를레잇디, 요를레히호’ 등 독특한 발음을 조금씩 변형하여 이루어지는데, 중간에 두성(머리로 노래하는 것)과 흉성(가슴으로 노래하는 것)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요들송만의 특이한 소리를 낸다. 알핀로제의 회장 동국대학교 이원영(전자공학과·04)씨는 “교차지점에서 다 함께 목소리가 꺾일 때 모두가 하나되는 느낌이 좋다”며 “이 부분이 다른 노래와 비교되는 요들송만의 매력 포인트”라고 말했다. 어디서든 자신을 표현할 유별난 특기가 돼주는 요들송이 고맙다고 입을 모으는 동아리 원들에게서 노래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요들송 악보를 구하기 힘들었던 과거에 손으로 직접 음악을 받아 적어 만들었다는 악보집에는 그들의 열정이 녹아있다. 노래를 부르는 자신과 듣는 이를 함께 기쁘게 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들은 모두가 알지는 못하지만, 알고 나서는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요들송을 선택했다.

치직- 치직- 여기는 HLØY ‘야라’입니다

우리대학교 중앙동아리 야라는 무선통신기계인 ‘햄’을 다루는 동아리다. 무선 통신기를 가지고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교신할 수 있다. 총무인 남지형(간호·07)씨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무선통신기로 연고전의 상황을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알리는 등 정보통을 도맡았다”고 말했다.

 교신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 아마추어 무선연맹에서 인증하는 국가고시를 치러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라는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우리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는 이들이 만든 안테나가 설치돼있다. 국내에 안테나를 직접 만드는 기술을 가진 동아리가 극소수이고 특히나 대학교 중 안테나를 가진 동아리가 우리대학교와 한양대 단 두 곳 뿐 이라는 점은 야라의 야무진 실력을 보여준다.

 가끔은 배달되기까지 내내 설레는 편지 한통이 그립듯 야라는 햄의 소음이 그리운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주파수를 맞추며 어쩔 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즐겁게 대화할 수 있고, 통신하는 상대방과 함께 모인 모든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햄 만의 독특한 매력은 세월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았다.

쎄느 강변에 흐르는 아름다운 샹송
‘트루바두르’

아름다운 어감을 자랑하는 프랑스어와 부드러운 샹송 특유의 음율은 뭇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이 아름다운 노래에 중독 된 대학가의 음유시인들은 성균관대학교 샹송동아리 트루바두르다.

회장인 성균관대학교 최영록(심리·07)씨는 “샹송이 익숙지 않은 음악장르라 소개할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웃는다”며 “하지만 권유에 못 이겨 한 곡 부르고 나면 너도 나도 제목과 가수를 물어 본다”고 말했다. 프랑스 특유의 유들유들함이 묻어나는 샹송의 멜로디에 부르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푹 빠진다. 우리와는 상이한 발음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가사 자체도 신선할뿐더러 노래 부르기도 좋다는 것이 샹송의 또 다른 매력이다.

트루바두르에서 다루는 노래들은 고전 샹송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1월에 가진 정기공연에서는 랩이 가미된 샹송으로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장르에 갖히지 않고 대학생들의 입맛을 끌 수 있는 다양한 노래들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이다.

최근 대학생들은 취업이라는 화두 안에서의 이야기만 반복한다. 자유와 다양성의 상징이었던 대학은 긴 세월동안 지켜온 그 자리에서 서서히 물러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남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이들은 분명 남아있다. 큰 물살에 휩쓸러 가지 않고 반짝거리는 힘. 이것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젊음일 것이다.
               

 글 김규진 기자 loveme@
사진 김지영 기자 euph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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