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장애인 야학

덩그러니 놓인 휠체어. 부자연스럽게 휘어있는 팔. 힘겨워 보이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입. 일반인들은 과연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그러나 방치된 휠체어에 앉아 소외된 시선을 받는 그들은 그 누구보다 원한다.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정상인’이라고 구별된 집단과 마찬가지로 배우는 것을.

▲ 민들레 장애인 야간학교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장애인들의 참된 배움터다.

"노들’은 노란들판의 준말입니다. 상호 협력과 연대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노란들판. 노들인들은 그 노란들판의 농부들입니다"

 지난 19일, 서울 마로니에 공원 노들장애인야간학교(아래 노들야학)에서 천막강의가 열렸다.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30여명에 이르는 장애인들이 각지에서 모여 마로니에 공원에서 강의를 들었다. 중간 중간 전기가 나가는 등, 수업을 하기에는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불편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항상 밝았다. 노들야학의 학생인 이준식(28)씨는 “성인이 되어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며 “환경적으로 열악한 점이 많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들야학은 지난 1993년에 개교한 이래로, 청년기에 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에 원래 있던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에서 내몰렸다. 하지만 노들야학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끝까지 수업을 이어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천막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오는 21일에는 80여일간 긴 천막수업 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갖게 된다. 노들야학의 교장인 박경석씨는 “노들야학의 천막수업이 언론에 보도되자 각지에서 보내주신 도움들과 모아왔던 돈으로 동숭동 쪽에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며 “하지만 아직 월세문제가 남아있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사회에 소외된 이들, 요즘은 소수자라고 많이 하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 작은자가 아니었을까요?”

 전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장애인 야간학교인 작은자야간학교(아래 작은자야학)는 1981년 미문야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겨났다. 30명 정도가 교육받고 있는 작은자야학 또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겪고 있다. 작은자야학의 장종인 간사는 “정부차원의 교육대책과 기관이 전무한 상황에서 야학에 대한 지원은 일 년에 천만원정도의 사업비가 고작이다”라고 말했다. 9평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도 야학의 가장 큰 고민거리중 하나다. 현재 이 공간도 야학의 소유가 아니어서 언제 길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노들이나 작은자와 같은 야학시설을 통해 배움을 접하는 장애인들은 그나마 행운이다. 노들야학의 교장 박씨는 “장애인 100만 명 중 고작 50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은 45.2%가 초등학교 졸업학력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학력 소외 계층이다. 그 결과 이들은 장애와 저학력이라는 이중적 차별로 고용, 승진기회, 임금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

오는 5월 26일부터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하 장애인교육법)이 시행된다. 장애인교육법에는 장애인야학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에 의하면 구체적인 지원 규정이 포함되지 않아 사실상의 지원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다.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 할 저 투쟁의 길에 온 몸 부딪히며 살아야한다. 민들레처럼”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장애인 야학은 계속되고 있다. 인천 민들레야간학교(아래 민들레야학)에서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김수미(33)씨는 현재의 장애인 교육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배우는 것에 대해 감사해한다.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돈을 내면서 간신히 배우고 있지만 배운다는 것이 너무 좋다” 민들레야학의 총학생회장 안명훈(30)씨는 “날씨가 추워지면 근육이 뭉쳐서 힘들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배우는 것이다”고 말했다.

비록 야간학교를 졸업한 장애인들의 대부분이 ‘백수’가 되지만 몇몇 장애인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우리 사회의 ‘편견의 장벽’을 뚫고자 노력한다. 민들레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씨는 “배우는 것 못지않게 실천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장애인 인권 활동가로 활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추위, 지원 부족, 무관심. 결국 어느 것 하나도 장애인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 없다.
 

글 최명헌 기자 futurewalker@
 사진 박소영 기자 behapp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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