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마왕’ 볼드모트를 물리친 해리포터도 ‘F’를 받은 과목이 있다. 바로 점성술 과목이다. 점성술 수업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건 해리포터만이 아니다. 늘 학구열에 불타는 천재소녀 헤르미온느는 심지어 “점성술은 형편없는 학문”이라며 수업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판타지 소설인『해리포터』에서 조차 점성술은 쓸모없고 허황된 이야기로 취급된다. 동양의 점성술인 사주에 대한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주카페’의 대중화와 함께 사주를 보는 사람은 늘었지만 아직도 사주는 재미삼아 한 번 듣고 잊어버릴 이야기로 치부되기 일쑤다. 사주는 미신이라고 단정 지으며 그 진정한 의미를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사주(四柱)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네 가지 기둥을 의미한다. 이 기둥은 사람의 출생 년, 월, 일, 시 등을 가리킨다. 사주 전문가들은 이를 운명의 바코드에 비유하곤 한다. 바코드를 읽으면 상품명, 가격 등 상품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주를 만세력*에 대입하면 그 사람에 대한 성향이 여덟 글자(八字)로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영산대학교 동양철학과 심귀득 교수는 사주팔자야 말로 ‘동양의 적성검사’라 부른다. 그는 중·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사주적성검사를 바탕으로 한 진로지도’를 강의하고 있다. 강의를 수강한 교사들은 진로상담을 할 때 학생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의 기본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사주풀이를 통해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한다.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학년부장을 맡고 있다는 박아무개씨는 “사주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체벌을 통해 아이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성격 성향이 얼마나 강력한지 깨달은 뒤에는 아이들을 바꾸려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다른 교사도 소위 ‘문제아’들이 얼마나 ‘사고’를 치는 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아이 사주가 개성이 강하고 멋 부리길 좋아하는 ‘극신강’이라 그렇다”며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임성원씨 역시 “사주팔자를 공부하는 것은 결국 남과 나의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평화 나눔 아카데미에서 ‘역학은 평화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사주를 통해 남에게 자기의 기준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음양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주의 인간관에선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 양의 요소가 있으면 음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임씨는 “사주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는 삶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물론 사주가 개인에게 결정론적 인생관을 강요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심교수는 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사주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주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에너지를 집중하게 해 그 외의 것에는 얽매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주는 운명학적 성격을 넘어서 자기 성찰과 건강한 인간 관계 형성의 훌륭한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립서비스’을 위한 점집탐방 그 이상이 필요하다. 임씨는 “남이 봐주는 사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말했다. 자신을 오롯하게 비추지 못하는 거울이 무의미하듯 내 인생의 맥락이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결여된 사주풀이는 신변잡기에 불과하다.

/이효정 기자 post-tina@

*만세력 :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음양오행의 기운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측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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