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한류를 이야기


공항에 들어서는 스타와 환호하는 사람들. 우리가 떠올리는 한류의 이미지다. 그러나 그 이미지 안에 ‘아시아 공동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백원담 소장은 한류의 앞날에 대해 “지금의 방식으로 한류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류 열풍이 시작한지 6~7년이 지난 지금, 지식인 사회 내에서 한류에 대해 새롭게 성찰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류가 우리사회와 동아시아에 남긴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대만의 문화를 집어삼킨 한류

대만은 사투리가 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면 대만사회 내 표준어의 사용은 급속히 늘어났다. 문제의 원인은 한국의 드라마였다. 한국의 드라마를 대만의 표준어로 더빙했고 사람들은 사투리보다 표준어를 많이 접하게 됐다. 자연스레 대만의 언어는 표준어로 통일화됐다. 더 나아가 대만의 사투리를 고수하는 사람들과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드라마가 그들간의 문화적 격차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드라마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만 방송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당했다. 한국드라마의 인기로 더 이상 대만 드라마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20년 전 한국사회가 일본 만화를 싼값에 마구잡이로 들여와 한국 만화 산업이 쇠퇴한 것처럼 말이다. 한류 열풍이 처음 시작할 당시엔 이러한 결과는 생각치도 못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한류는 우리사회와 동아시아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동아시아와 한국이  서로의 문화 상품을 소비하면서  대면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지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문화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서구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한류는 더 이상 아시아의 가능성이 아니다.

오만한 일방통행의 한류

전문가들은 한류가 갖는 문화제국주의적 성격을 지적한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고명철 사무국장은 “한류는 문화적 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문화의 흐름이다”라고 한류를 평가했다. 아시아 각 지역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한국중심적 시선이 한류의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백 소장 역시 “일본의 경우 그들의 문화를 아시아에 내보낼 때 일본의 색채를 철저히 없애지만 한류의 경우 자랑스럽게 한국 문화의 색깔을 드러낸다”며 한류가 갖고 있는 문화제국주의적 욕망을 꼬집었다.

지역적 차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 역시 한류가 갖는 한계다. 지역의 성격에 따라 대만, 홍콩, 일본, 베트남, 중국이 한류문화를 접하는 이유가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중국만 해도 지역에 따라 한국 문화에 대한 접근이 상이하게 달라진다. 가부장제의 성격이 강한 중국의 북부지역은 가족중심적인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반면, 생활 수준이 높은 상해 지역의 사람들은 매니아적인 드라마나 영화를 주로 소비한다. 이에 대해 백 소장은 “지역에 따라,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한류를 소비하는 기호가 다 다르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한류에 대한 아시아의 문화적 취향을 단편적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한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욕망은 우리사회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류라는 일방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과 동아시아는 수직적 관계로 변형된다. 한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던 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문화적 수준의 차이로 비춰진다. 그리고 이런 수직적 인식은 한국사회에서 아시아 이주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발전한다. 고명철 사무국장은 “동아시아 지역을 섬세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동아시아를 자꾸 미개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시선을 조금 더 확산시키면 동아시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조직팀장으로 일하는 띠뚜씨 역시 “가장 힘든 것은 불쌍한 나라에서 돈벌려고 왔다고 바라보는 시선이다”며 “미국이나 유럽사람들보다 아시아에서 오는 사람들이 훨씬 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말했다.

동아시아가 한류에 바라는 것

백 소장은 ‘한류가 어떻게 지역문화와 공생할 수 있느냐’가 한류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문화의 일방적 흐름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 한류를 재구축해야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선 동아시아 각 지역이 한류에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명철 사무국장은 “베트남 사람들이 한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식의 통속적 관점을 대단히 싫어한다”며 “그들이 한류에 대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식민지, 전쟁, 독재를 극복한 한국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지역 문화의 생산성을 높여줄 수 있어야한다. 백 소장은 “아시아의 문화생산력을 높여주는 것이 한류가 지속가능한 길이다”고 말했다. 한국영화라도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공동투자하거나, 다양한 나라들이 합작해 대중 가수를 키워내는 식의 현지화 전략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창조적인 생산을 하지 못한 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 문화는 단순한 경제 상품 에 불과하다. 문화의 소비만을 촉진시키는 문화의 교류는 문화식민지를 남길 뿐이다. 대만의 비극처럼 말이다.

/김용민 기자 sinsung704@yono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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