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ONG’S 내 인생의 만화 #1

내가 어릴 적, 우리 아파트 위층에는 피아노를 잘 치는 오빠가 하나 있었다. 그 오빠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많이 친했다. 그 덕택에 엄마는 피아노학원을 두 달만에 때려 치웠던 나와 그 오빠를 종종 비교하곤 했다. ‘엄마 친구 아들’인 셈이다. 피아노를 잘 치는 남자는 고상하다고 여겼던 엄마 때문인지, 어린 내게도 오빠는 지극히 고상한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오빠 집에 가는 엄마를 멋도 모르고 따라갔다.

하지만 나까지 신경쓰기 힘들었던 엄마는 나를 오빠 방에 버려 두었다.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올챙이나 보고 있으라는 뜻이었을 거다. 허나, 불행히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오빠 방 책장 한 켠에 나란히 꽂힌 31권의 ‘슬램덩크’ 만화책. 오빠를 고상하게만 여기는 어머니에게 일러바칠 ‘꺼리’가 생겼다는 은밀한 기쁨과 함께 나는 만화책 첫 장을 펼쳐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내가 사랑하는 만화 ‘슬램덩크’를 만나게 된 계기다.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애장판(매니아들을 위해 표지 등을 보완해 새로 펴낸 버전)이 나오고 전세계적으로 1억 부가 팔린 명작이다.

사실 줄거리는 별 거 없다. 평범한 소년이 우연찮게 농구를 시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농구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깨닫다는 아주 평범하고도 틀에 박힌 스토리다. 주인공이 농구공을 들고 있는 어느 만화를 펼쳐 들어도 쉽게 볼 수 있는 얘기다. 하지만 왜 그 이후로 수천, 수만의 만화를 봐온 내가 유독 이 만화의 매력에서는 쉽게 빠져 나오지 못했을까?

▲ 다이나믹 그 자체...

답은 '역동적인 화면 구성'에 있다. '고딩' 주제에 말이 안 나오도록 농구를 잘한다. 고교 농구 최강자로 나오는 해남고의 이정환은 결코 고등학생의 체격이나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프로 선수의 그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NBA 수준의 농구 기술을 구사한다. (사실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 NBA 농구 화보집을 보고 그대로 표절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연재가 끝난 이후 사실로 밝혀져 씁쓸했다.)

만화의 칸과 칸 사이에서 선수들의 땀이 뚝뚝 흘러 떨어진다. 당장이라도 농구 코트에 가고 싶어진다. 북산 고등학교가 벌이는 시합마다 내 심장도 울린다. 눈은 쉴새없이 달리는 농구공을 쫒는다. 매 권마다 숨막히게 매력적인 농구 경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예전에 농구 선수를 했던 경험과 자신의 농구에 대한 꿈을 이 만화책에 모두 불어넣었다.

농구 만화라서 남자애들만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슬램덩크’는 여학생과 대학생들에게까지 정말 많이 사랑 받는 만화다(본 필자도 여자다!). 필자는 그 이유를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에서 찾는다.

▲ "너흰 풋내기니까!"

우선, 무한도전의 박명수 같은 주인공 강백호를 보자. 별 재주는 없지만 언제나 자신이 북산고의 에이스다. 도내 최고인 능남고의 윤대협은 물론이고 국내 최고인 해남고의 이정환도 강백호의 말 속에서는 자기보다 한 수 아래의 녀석들이다. 언제나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실력에 절망하는 듯 하다가도 금세 자신감에 넘쳐 웃음 짓는다. 이런 백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외의 인물들도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강백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채소연이 눈이 하트가 되도록 쫓아다니는 북산고의 서태웅을 보자. 서태웅은 소연 외에도 수많은 여학생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농구 외의 생활에서는 재수없거나 멍한 모습이지만 일단 공을 손에 잡으면 북산 최고의 선수가 된다. 강백호나 서태웅 외에도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등이 제각기 다양한 개성과 사연으로 우리를 울고 웃게 한다.

피아노를 잘 쳤던 이웃 오빠의 방에서 이 만화의 첫 장을 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10년, 강산도 바뀐다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슬램덩크’를 사랑해왔다. 위에 몇 자 적는 것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슬램덩크 이후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슬램덩크’만큼의 찬사는 얻지 못했다.

사실 이 정도로 재미와 감동과 역동적 움직임을 한 번에 담은 만화가 그의 손에서 또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슬램덩크는 그만큼 수작이다. 만화라는 깊은 늪에 한 발을 담궈 버린 사람이라도 슬램덩크를 안 보고는 그 늪에 제대로 빠질 수 없다. 강백호와 서태웅의 열정이 가득한 이 만화, 간간히 뚱보와 노랑머리와 콧수염이 나와 농구 시합 직전의 긴장을 웃음으로 바꿔주는 이 만화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Tip, Tip, Tip! 현재 우리나라에는 애장판 24권이 나와 있다. 선수들의 모습이 가득 담긴 표지와 컬러 페이지를 즐길 수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녀보면 슬램덩크 뒷이야기도 감상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네O버를 뒤져 보시기 바란다.

이런 분들에게 권한다 : 과거의 추억을 느끼고 싶은 옛 슬램덩크 소장자 및 팬 여러분, 만화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분, 만화계에 발은 들여 놓았으나 아직까지 ‘슬램덩크’를 보지 못한 분,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박진감이 생각보다 적어 실망하신 분

내 맘대로 별점: ★★★★☆(4.5/5점 만점) – 다 좋은데 NBA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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