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말했지,
네 자신을 알라고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나 자신이 미욱하고 학문이 고루(固陋) 과문(寡聞)하여 ‘인생 물리학’이란 큰 주제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쓴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삼가 글을 읽은 이들의 아량을 구하는 바다.

자연에 일어나는 온갖 천변만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에 의한 것이다. 약력(weak force), 중력, 전자기력, 강력(strong force) 이 네 가지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 통합될 수 있는지를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 약력은 전자기력과 통합될 수 있음을 이미 사람들이 보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이휘소 박사가 약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머지 중력과 핵력 또는 강력에 대해서는 아직 만족할 만한 통합이론이 없다. 그러니 아직도 할일은 많다!

물질을 이루고 있는 근본 재료가 분자이고 그 분자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원자이며 원자는 그 중심에 있는 핵이 있다. 원자와 핵을 동그란 모양으로 생각해서 핵의 지름을 1m라 하면 원자의 지름은 100km쯤 된다. 원자의 질량은 핵에 대부분 몰려있다. 그러니까 원자는 거의 빈 공간에 극히 작은 영역에 질량이 모여 있는 셈인 것이다. 자연은 균질한 것이 아니다! 자연은 평등하고 거리가 멀다!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있으며 양성자들 사이의 강한 전기적 반발력을 이기고 강한 힘으로 뭉쳐있다. 양성자들 사이의 거리가 짧아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은 아주 강할 수밖에 없다. 양성자들의 큰 반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핵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핵의 발견 이후 물리학자들이 고심했던 문제이다. 이 문제를 일본의 유가와 히데키가 중간자(meson)를 도입하여 해결하고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강한 반발을 하는 양성자들끼리 중간자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전기적 반발력을 이기고 강하게 결속을 유지하는 것이다. 관계를 만들거나 결속력을 강화하려면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한다!

전자기력은 전하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맥스웰에 의해 전기력과 자기력의 통합이론이 최종 정리되었다. 핵력은 아주 근거리에서만 작용하고 거리가 멀어지면 그 효력이 급격히 떨어져 원자크기의 거리에서는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기력은 거리가 멀어도 거리제곱에 반비례하는 식으로 변할 뿐 계속 작용한다. 현대적 이론에 의하면 핵력을 중간자가 매개하는 것처럼 전자기력은 광자(photon) 즉, 빛이 매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자기력도 핵력처럼 매개체 즉, 주고받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중력은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에 나타는 힘으로 전자기력과 비교하면 그 세기가 작다. 그러나 힘이 미치는 방식은 전자기력과 유사하여 거리제곱에 반비례해서 작용하는 힘의 세기가 줄어든다. 비록 세기는 작지만 전자기력과 유사하게 나타나므로 이 둘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이론은 없는 상태이다. 중력도 현대적 이론으로 표현하자면 질량을 가진 물체들이 소위 ‘중력자(graviton)’를 교환함으로서 나타난다.

약력은 핵의 붕괴로 알게 되었다. 베타붕괴에서 전자가 나오는데 핵의 붕괴 전후에 질량-에너지 등가원리를 이용하여 에너지가 보존되는지 조사해보면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처음에 선 운동량 각운동량도 보존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처음 과학자들은 에너지 보존법칙이 더 이상 자연법칙이 아닐까 의심하였고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퀴리부인과 닐스보어도 그런 사람들 중에 있었다. 그러나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로 유명한 볼프강파울리는 에너지 보존법칙이 자연법칙으로 옳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기존의 실험방법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중성미자(neutrino)를 예측하였으며 이를 실험적으로 발견한 사람들이 최근 노벨상을 받았다. 약력에 관계하는 중성미자는 워낙 반응성이 작아서 실험적으로 측정이 잘 안되었던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미천하다고 여겨지는 자는 무시당한다! 그러나 그런 자가 세상에는 꼭 필요한자다!

핵력, 전자기력, 중력 약력 중에 약력의 세기가 가장 작다. 핵붕괴나 핵융합 과정을 알고자 하면 다른 힘은 핵력에 비하여 세기가 작아 무시할 수 있으므로 핵력만 알면 된다. 그러나 지표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려면 핵력은 필요 없다. 너무 근거리에서만 작용하므로 원자나 분자의 반응에 큰 영향을 주는 전자기력이 더 중요해 지는 것이다. 핵력은 무시된다. 중력의 영향도 미미하지만 있다. 그러나 전자기력만 못하다. 행성이나 별 은하  블랙홀(black hole)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중력이 중요해진다. 다른 힘은 무시당한다. 요즘의 천체물리학에서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가 암흑물질이다.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량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 암흑물질이 우주의 운명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 알려진 바로는(20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천체에서 오는 중성미자의 검출) 이 중성미자가 암흑물질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미미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우리 우주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주 강한 핵력의 영향력 범위는 핵의 크기이다. 전자기력은 영향력 범위가 태양계 정도의 크기이고 중력은 은하정도의 크기이며 약력은 우주의 범위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것이 아니요 크고 거대한 것도 크고 거대하지 않은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각기 그 의미가 있을 뿐이다!

사람 사는 곳에서도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으면 결속력이 생긴다. 연인이나 절친한 친구 사이에도 무엇인가 주고받음이 있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뇌에서 시냅스가 형성되어 우리가 학습의 효과를 보는 것도 뇌신경 세포간의 반복적 주고받음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인간사에는 부정적인 주고받음에 의한 결속과 관계가 있다. 촌지, 떡값, 뇌물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도 간교하게 파고들어 사람을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사이에 완전히 오고감이 없으면 어떨까? 삶이 삭막해질 것이다. 사람들이 오고감 주고받음을 왜곡하지 않으면 좋겠다. 주고받음이 없어도 문제이지만 왜곡해도 문제인 것이다. 오고가고 주고받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정치인과 우리들은 무엇을 주고받았기에 우리 정치풍토와 정치수준이 이럴까! 정치인들은 현란한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우롱해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이제는 바꾸고 바뀔 필요가 있다. 진정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가 올바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말이 필요 없다.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고 그런 사람을 보기를 원해야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변화되고 변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아도 그렇다. 학부모의 자식에 대한 허황된 기대도 문제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무시하고 겉만 포장하려는 흉내만 내면 모든 것이 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육기관과 행정당국도 문제이다. 잘못은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인 것이다. 작용 반작용에는 힘이 있고 그 힘을 ‘매개’하는 것이 자연에 존재하듯이 우리의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가 ‘매개체’로 주고받은 것이 지금의 우리 교육현실인 것이다.

아무 변화가 없던 곳에 변화가 있으려면 ‘작용’이 있어야하고 반드시 그 ‘반작용’이 따른다. 그것이 자연 법칙이다. 치료약도 부작용이 있듯 인간사도 마찬가지이다. 변화를 꾀한다면 반드시 그 반작용을 생각하라! 작용이 미미할수록 반작용도 미미하다. 허나 그 작용 범위는 미미할수록 크다.

말이 현란할수록 오래갈 수 없다. 말이 많은 자는 속효적이고 즉흥적일 수밖에 없다. 말이 없으나 지속적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계속갈 수밖에 없고 계속 오래 간다. 핵력은 반응은 빠르나 지극히 좁은 범위에서 일어난다. 약력은 반응은 거의 없으나 우주의 운명을 결정한다.

바이러스나 균류의 포자는 우주 공간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적당한 환경을 만나면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고등 생물은 우주 공간에 벌거벗겨 놓는 순간 생명을 다한다. 단순한 것의 생존과 번식범위는 복잡한 것의 생존과 그것보다 훨씬 크다. 고등 생물일수록 생존환경범위가 제한적이지만 단순한 것일수록 그 범위는 더 넓다.

물리학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세상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현대물리학의 중심이며 현대 과학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은 거의 모두 이 원리에 근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불확정성은 불확실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성을 나타낸다. 처음 이 원리를 찾아놓고 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고 생각한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말하는 바를 최소한의 상호작용정도를 나타내는 양으로 파악하고 싶다. 힘이란 힘을 미치는 대상이 서로 상호관계하면서 나타내는 현상이다. 상호관계를 무엇인가 주고받으면서한다. 만일 우주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서로 아무런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상호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호존재를 알 의미가 없다. 우주안의 그 무엇도 개별적으로 완전 독립된 것은 없다. 아무 관계가 없으면 무의미 하다.

성공하고 싶으면 집중하라! 그리고 지속적으로 가라! 애쓰는 것이 아무리 미미하다고 생각될지라도 자신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집중하면 모두 이루어진다. 단, 바라는 바가 자신과 연과성이 있어야한다. 즉, 자신을 알거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허황된 욕심은 화를 부를 뿐 남과 나를 모두 망치는 길이나 내 주변을 위하는 것은 결국 나와 내 이웃이 모두 잘 되는 길이니 자연은 이미 이런 이치를 보여주고 우주는 그런 원리로 움직이고 있다.

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고 실수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만이 실수를 한다. 자신들이 실수를 하면서 자연도 오차를 보이고 실수도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그래도 인간의 오만함을 탓하지 않는다. 단지 나중에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뿐이다.

자연은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을 한다. 우주가 말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온갖 술수와 모략을 만들면서 자연이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기록장치보다 정교한 기록장치에 모든 것을 기록해 두고 있다가 나중에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 대가를 치르게 할 때 말이다.

사람들이 쫒고 있는 권세와 위세가 다 부질없는 것이니 참 나의 본 자리를 찾으려 애씀이 바람직한 것 같다! 미천(微賤)한 것은 결코 미천하지 않으며 거대한 것 또한 거대한 것이 아니니 그냥 앞으로 나아감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온 길을 보면 수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반복되는 것도 있었고 풀렸던 것도 있었다. 지금도 인생이 무엇인지 자연의 오묘한 조화는 또 어찌 그러한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한 가지 믿게 된 것은 살면서 성심(誠心)성의(誠意)성실(誠實) 그리고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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