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문의 인생물리학 #10

아침에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섰다. 나가다 보니 깜박 잊고 놓고 온 것이 있어 다시 집으로 가서 가지고 나왔다. 처음 나올 때 항상 나오던 시간이 있어 알맞게 버스 시간에 댈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뛰었는데 정류장에 도착하자 방금 차가 떠나 버렸다. 다음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시간이 보통 때 보다 조금 늦어지기는 했어도 차가 빨리 달리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버스 아저씨가 천천히 간다. 사람이 다 탔는데도 조금씩 더 기다리다 간다. 나는 늦을까 마음이 타는데 버스 아저씨는 태평세월이다. 게다가 가는 동안 이상하게도 차가 신호등 마다 간발의 차이로 걸렸다. 지각하지 않을까 마음은 계속 조마조마 했고 바싹바싹 입이 탔다. 이미 시간은 늦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 따라 차가 막혔다. 이제는 포기다. 한시간 포기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서 내리자마지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었다. 약을 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호등 불이 바뀌었다.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데 무엇인가 질퍽한 것이 앞머리에 떨어져서 옷자락의 섶으로 튀어 흐르면서 가방까지 갔다. 새똥이다! 재수 더럽게 없다. 그 놈의 새 다음에 보면 새총으로 혼내 주리라! 휴지를 꺼내 대충 닦고 학교 화장실에서 정리를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오늘이 정말 인생 최악의 날이구나!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늘 제출하려고 가져온 보고서가 바뀌어 있었다. 잘못 가져온 것이다.

깜박 잊어 다시 가리러 갔던 보고서가 그 보고서가 아니었다. 이럴 수가! 허탈했다. 아주 중요한 것이었는데! 준비도 많이 하고 공도 많이 들이고 그래서 기대도 컸는데!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하루 종일 수업 시간에 아무 것도 안 들리고 보이지도 않았다. 몇 날을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하여 완성한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아! 왜 나에게 이러한 불행이 온 것일까!

설상가상(雪上加霜)! 글자 그대로 눈 위에 서리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경우이다. 없는 재수가 몰아쳐 온 것이다. 불행이 몰려다닌다. 끼리끼리 붙어 다닌다. 유유상종(類類相從)하여 나타난다. 형이상학적인 것들도 형이하학적인 것처럼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위의 상황을 서양말로 머피의 법칙 또는 ‘Misfortunes never come singly’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제 열심히 노느라 늦잠을 잤다. 학교에 지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숙제를 못했다. 후회스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리나케 등교준비하고 아침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 빠른 걸음 반 뜀박질 반으로 정류장에 도착하자 운 좋게 버스가 왔다. 오늘 따라 시내가 뻥 뚫려서 차가 잘 빠진다. 신호등도 알아서 척척 파란 등으로 바뀌고 차를 내려 건널목을 건널 때도 바로 건널 수 있었다. 늦었지만  교실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 지각이겠거니 하면서 조용히 조심스럽게 교실에 들어섰는데 아직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다.

아! 다행(多幸)이다! 잠시 후 선생님이 오셨다. 수업이 다 끝나고 숙제를 바로 걷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녁까지 제출하라 하셨다. 그래 도서관에서 숙제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급하게 친구에게 연락할 일이 있어 전화를 해야 했는데 동전이 없었다. 또 행운이 있었다. 누군가 공중전화를 쓰고 돈을 남겨 두었다. 하루 종일 이런 저런 크고 작은 행운들의 연속인 날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서양말로 위 상황을 표현하자면 Fortunes never come singly 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말로 표현하면 비유의 적합성을 떠나 ‘도랑치고 가재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고, 좋고 또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운도 몰려다닌다. 불행이 몰려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가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행운의 연속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라! 우리에게는 불행보다 행운이 더 많이 온다. 그런데 그것을 잘 모른다. 불행도 잘 살펴보면 행운인 것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의미에서가 아니고 불행이 나에게 던지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불행일 수 없는 것이다. 잊은 것이 있어 집으로 되돌아갔다가 버스를 놓치는 경우 실은 보고서를 잘못 가져왔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계속 기회는 있었는데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행운의 여신이 화가 나서 새로 하여금 똥을 선물하여 또 생각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불행이 계속 겹쳐오는 것처럼 보였다.

일도 몰려서 오고 몰려서 한다. 한가할 때는 한없이 한가하다. 바쁠 때는 정신없이 바쁘다. 일 처리를 몰려서 하는 것이다. 시험공부도 벼락치기로 몰아서 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하루 종일 24시간 일을 계속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이 있고 쉬는 시간이 있고 잠자는 시간이 있고 음식을 먹는 시간이 있다. ‘시각’이 아니라 ‘시간’이 있는 것이다.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연속적인 것은 없다. 그렇다고 완전 불연속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물리학에서 이러한 것을 ‘양자현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연속체인 것 같은데 덩어리 혹은 알갱이로 표현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그냥 연속체로 생각하는 것이 더 유용할 때도 있다.

빛은 전자기파이다. 일반적으로 파동은 사인이나 코사인 함수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고 사인이나 코사인 함수는 연속함수이므로 파동은 어떤 범위에서 연속적 변화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광양자설은 빛이 알갱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알갱이라 하면 각 알갱이가 따로 떨어져있는 불연속체라는 것이다.

덩어리 또는 알갱이는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음 혹은 치우쳐져 있음이다. 몰려있다는 말이다. 불행이 몰려 다니 듯, 행운이 몰려 다니 듯, 인간사(人間事)도 잘 보면 양자현상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로 양자현상을 이해하면 인간사를 이해하고 나를 찾는데도 유용하리라!

/최진문 교수(학부대학·물리)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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