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똥의 유럽레시피 #8

▲ 퐁뇌프의_야경

재료.

파리를 샅샅히 훑을 수 있는 지도 한 장. 퐁뇌프의 야경 아래서 와인 향기를 음미해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값싼 와인 한 병과 튼튼한 코르크 따개. 마음에 드는 카페가 나오면 바로 앉아서 커피 한 잔 즐길 수 있는 여유와 금전. 파리에 노을이 지기를 기다릴 것(예상외로 해는 늦게 지더라).


만드는 방법.
 

▲ 세느강을_오르내리는_유람선
  파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내 생각에 아무래도 세느Seine 강이 아닌 가 싶다. 세느 강. 프랑스 북서부를 흐르는 길이 776km의 강. 부르고뉴 ·상파뉴 ·일드프랑스(파리 분지) ·노르망디 등을 거쳐 영국해협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프랑스에서 3번째로 긴 강이다. 디종의 작은 샘에서 시작한 세느 강은 부르고뉴를 지나 예술의 도시인 파리에 도착한다. 이 세느 강 좌우에 수많은 파리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 굳이 보물을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다. 이미 파리의 세느 강을 가로지르는 36개(32개??)의 다리가 당신을 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 가운데서도 바로 이 세느 강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한 몫을 하는 것은 세느 강에 걸쳐져 있는 다리들이 틀림없는 것 같다. 세느 강은 우리나라의 (거대한 강폭을 자랑하는) 한강과는 달리 강폭이 그다지 넒지 않아서 모두 걸어서 다리를 건널 수 있다. 게다가 파리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기 위해서는 세느 강의 좌안과 우안을 넘나드는 것이 필수기 때문에 다리들을 건너지 않고서는 파리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맨 먼저 나를 맞아준 다리는 바로 시테 섬과 파리 우안의 카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지구를 연결해주는 퐁뇌프Pont Neuf다. 프랑스어로 다리는 pont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퐁뇌프 다리’라는 것은 잘못된 어법!!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퐁뇌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 제목 때문에라도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neuf는 ‘새로운’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퐁뇌프는 바로 ‘새로운 다리’가 된다. 그러나 그 이름과는 달리 1578년에 착공하여 1606년에 완공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그러나 나는 너무나 낭만적인 상상에 젖었던 탓인지 막상 시테 섬에서 나와 이 다리를 건너려고 했을 때, 우아하기 보다는 건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이 다리에 약간 실망을 하고 말았다. 다리 교각에 ‘Pont Neuf’라고 써 있지 않았다면 이것이 퐁뇌프 다리인가 싶을 정도로. 물론 다리 위를 지나는 수많은 퐁뇌프의 연인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 오르세_미술관의_시계탑을_통해_바라본_세느_강의_정경

  그래도 디자이너 겐조가 10만 송이의 꽃으로 감싸기도 했다는 이 퐁뇌프를 그냥 내 뇌리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 하여 파리에 어스름이 짙게 깔린 저녁에 친구와 함께 와인 한 병과 코르크 따개를 사서 다시 이 퐁뇌프 아래를 찾았다. 의외로 많은 연인들과 사람들이 해가 진 뒤의 세느 강변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둔덕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퐁뇌프가 낮과는 다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비록 와인을 즐길 줄은 모르지만, 그저 와인 병에서 흘러나오는 포도주 향이 나를 더 흥분시켰다. 많은 것이 필요 없었다.

▲ 세느의_밤은_깊어만_간다._저들은_무슨_이야기를_나누고_있는_것일까
순간, 젊은 우리가 세느 강의 밤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인생의 절정은 맛본 것 같았다. 세느 강의 퐁뇌프 아래서 우리는 그저 분위기에 취해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낭만과 고독을 다시금 되찾은 것만 같았다.
 
  두 번째로 나를 반겨준 다리는 루브르 박물관 언저리에 자리 잡은 퐁 데 자르Pont des Arts다. ‘예술의 다리’라고 하면 딱 좋다. 런던의 밀레니엄 브리지와 마찬가지로 보행자 전용 다리지만, 그 크기가 아담해서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육중한 돌다리가 아니라서, 나무 널빤지로 된 보도를 밟는 느낌이 자못 산뜻하다. 그러나 내가 이 다리를 추천한 까닭은 따로 있다. 이 다리에서 감상하는 파리의 노을이 어디에도 비할 데 없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 퐁_데_자르에서_파리의_노을을_바라보다

위로 눈을 돌려보면 퐁뇌프가 서 있고, 바로 왼쪽에는 위엄한 루브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멀리 에펠탑도 눈에 잡힐 듯 선하다. ‘예술의 다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리 위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노을을 닮은 애잔한 선율을 연주한다. 한 쪽 난간에서는 한 쌍의 연인이 진한 프렌치 키스를 연발한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 주위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연발되는 이곳이 바로 퐁 데 자르 위다.

이 다리 위에서 고요히 흐르는 세느 강을 바라보자. 퐁뇌프에서 낭만을 찾았다면 이곳에서는 잠시 휴식을 취해보는 거다. 다리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도 좋다. 나는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긴 이번 배낭여행을 슬슬 마무리 지을 준비를 했다. 몇 번이고 힘든 고비가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그 당시의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마저도 아쉬웠다. 파리의 노을은 점점 검붉은 색을 더해갔다.

  퐁 데 자르 우안으로 직진을 해서 내려오면 현존 하는 교회 중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생 제르맹 데 프레 교회를 만날 수 있다. 이 교회에서 시작되는 생 제르맹 대로는 예전부터 카페가 많아 ‘카페 삼각지’라고 불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역시나 오스트리아의 빈에서도 ‘카페 첸트랄’을 들렸던 그 열성으로 이번에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자주 만났다던 ‘카페 드 플로르’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재단장을 목표로 10월까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한다는 쪽지가 달랑 붙어 있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맞은  편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로 향했다. 이 곳 역시 파리의 많은 화가들과 문인들로부터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던 곳이라고 한다.

▲ 레_되_마고에서_시킨_쇼콜라와_우유_한잔

생 제르댕 데 프레 교회를 바라보고 앉아 묽은 쇼콜라 한 장을 청했다. (마드리드의 초콜라테리아에서 맛 본 초코라테는 이보다 100배는 진했을 것이다.) 카페 문화를 빼고 프랑스인들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파리 도처에 카페가 널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나에게는 다들 카페에 앉아 나름의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 매우 부럽게만 보였다. 굳이 이곳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가 나오면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아 뜨거운 커피 한잔 청해보시라. 파리의 심장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번외편. 지베르니Giverny

  아름다운 화가 모네는 죽었지만,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정원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를 반긴다. 모네의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지베르니의 ‘모네의 정원’은, 굳이 모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그 곳의 아름다운 정원과 모네의 치열한 삶 덕분에 정말 여러번 감동하게 되는 곳이다.

지베르니에 가려면 일단 베르농으로 가야 한다. 파리의 생 라자르 역에서 베르농이나 루앙 행 열차를 타고 40~1시간 15분 후에 베르농 역에서 내린다. 역 악의 Place de paris에서 지베르니행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거나 강가를 따라 30분 정도 걷다보면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가 나온다.

모네가 특히나 일본 판화에 많은 애정을 쏟아 부었다는 사실은 아시는지. 그 덕분인지 많지 않은 동양인 관광객 중에서 대다수가 일본인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안내도를 참고해 지베르니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먼저 모네가 자주 들렸다는 작은 교회를 찾아보고 그 교회 뒤로 조성된 마을 묘지 가운데 자리 잡은 모네의 묘를 찾아보자. 모네는 그의 아들과 함께 가족 묘지에 묻혀 있다.

▲ 모네가_살았던_집

그리고 나서 모네가 살아생전에 아꼈던 정원과 집으로 자리하자. 그가 <수련>시리즈를 그린 곳으로, 모네가 직접 정원과 연못을 만들었다. 정원과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오른쪽으로 모네의 집, 왼쪽으로 수련을 그린 아틀리에가 나온다. 그리고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정원의 북쪽으로 그 유명한 ‘물의 정원’이 있다. 떠나자. 수련이 있는 그 연못으로. 

연재를 마치며.
이로써 8번의 짧다면 짧았고 길다면 길었을 연재가 끝이 났다. 처음에 따로 연재를 여는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제 와서야 이렇게 아쉬워하는 까닭은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했기 보다는 단지 나의 어줍잖은 글쓰기 재주를 뽐내는 데 그치지 않았을까하는 노파심에서다. 그래서 지난 내 여름방학 동안의 유럽여행에 대한 뒷이야기가 더욱 궁금하다거나 나의 도움을 혹시나 절실히 필요로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나의 이메일(rodite15@hanmail.net)을 많이 애용해 줄 것을 부탁드리는 바이다. 이 자리를 허락해주신 분들과 그동안 애독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덧붙여 유럽에서의 예민했던 내 감성과 용감했던 낭만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겨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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