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밴드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대학생 밴드지만 과거를 회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 과거를 알아보기 위해 세 명의 인터뷰이(Interviewee)를 찾았다. 이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대학시절 열정을 다해 밴드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들이 들려주는 그때 그 시절에 귀 기울여보자.

▲ /사진 김평화 기자 naeil@yonsei.ac.kr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조진원(이과대·세포생물학)교수

그 당시는 학내에 공식적인 밴드 동아리가 없었다. 따라서 뜻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팀을 꾸렸다. 이렇게 구성된 밴드들은 대학가요제와 같은 대회에 참가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가요제에서 수상한 팀은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예인처럼 활동했다. 이 때의 밴드 활동은 취미나 관심 이상의 것이었다. 대학생 밴드가 직접 만든 곡이 인기 순위에 오르기도 하고 그 시대의 유행가가 되기도 했다. 대학생 밴드가 단순히 대중문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이끌어 대학생 밴드와 전문 밴드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이다.

정식 동아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아리 방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악기를 배울 교육 시설이나 마음껏 연주할 수 있는 합주실도 없었다. 따라서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대신 아현동 등지의 공간을 월세로 빌려 그들만의 ‘음악실’을 만들었다. 방음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직접 계란 판으로 방음벽을 만들기도 하고, 악기도 하나하나 구입해 갖춰놓곤 했다. 그 공간에서 서로서로 악기 연주를 가르쳐주고 함께 연습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Hotel California』, 『Free Bird』와 같은 외국 유명 밴드의 노래를 연주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만든 창작곡도 많이 불렀다. 한명이 음악을 만들면 아지트인 음악실에 모여 다들 함께 연주하면서 다듬어 고쳐나갔다. 그러나 지금 대학생 밴드들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타인의 곡을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을 드러내는 창작활동 또한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사진 김평화 기자 naeil@yonsei.ac.kr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합주실 DMZ 한성욱 사장

과거 대학생 밴드는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와 같은 대회 진출이 목적인 팀이 많았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겠다’는 의식이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뜻있는 학생들은 실용음악학과와 같은 관련 학과로 진학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학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밴드는 취미와 친목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옛날에는 악기가 고가였을 뿐만 아니라 종로의 ‘낙원상갗 이외에 구입처도 마땅치 않았기에 좋은 악기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자신의 악기에 대한 소유 의식이 강했다. ‘자신의 것으로만 연주해야 한다’는 의식이 당연시 됐고 다른 사람의 악기에 손대는 것조차 어렵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의식이 많이 변한 것 같다. 합주실에서도 키보드나 기타를 대여해주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그런 것에 대해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 

밴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굉장했다. 특히 어른들의 보수적인 시각이 심했다. 기존 체제에 반하는 저항의식이 담긴 음악이 유행해 밴드라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밴드가 다루는 음악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밴드가 강하고 거친 분위기의 곡을 다뤘던 것도 그러한 인식에 한몫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과거에는 밴드 활동이 용기내고 마음먹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밴드에 대한 인식이 변했고, 학생들도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변했다. 많은 학생들이 조용히 듣는 관객보다는 무대 위의 스타가 되고자 한다.

▲ /사진 홍선화 기자 maximin@yonsei.ac.kr

9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후반까지, 밴드 ‘데이브레이크(Daybreak)’

단과대에는 밴드가 존재하지 않았고 학내에 공식적인 밴드 동아리는 하나뿐이었다. 따라서 학교 밖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밴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우누리’, ‘천리안’ 등의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인맥을 활용해 알음알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인터넷 활성화로 밴드를 조직하기가 굉장히 쉽다. 또한 당시에는 제대로 악기를 가르치는 학원이나 교육 시설이 드물었다. 현재는 홍대 근처 연습실이나 학원 등의 교육 시설이 많아지기도 했고,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당시 밴드 동아리에서는 선후배간의 기강이 굉장히 심했다. 동아리에 가입을 하면 개인 시간표를 제출하고 공강 시간을 표시했다. 공강 시간에 동아리 방에 있지 않으면 선배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특히 연고전 같은 외부 행사 때는 신입 회원들은 경기를 보지 못하고 스피커만 지켜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선배들이 반 우스갯소리로 ‘고려대 학생들이 스피커 선을 끊어갈지 모르니 잘 지키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행사를 많이 다니다보니 특히 규율이 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밴드에서 개인적인 일들을 존중해주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생 밴드나 전문 밴드를 음악에 미쳐있는 아티스트라고 단편적으로 인식해버렸다. 하지만 요즘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음악에 관심이 있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으로 본다. 기타를 메고 독특한 액세서리나 장식을 한 밴드의 모습 또한 하나의 개성으로 인식한다. 흔히 요즘 시대를 ‘자기PR시대’라고 한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외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익숙한 사회에서 과거에 ‘다르다’고 생각됐던 밴드의 차림 또한 하나의 자기 PR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승희 기자 unique_h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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