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부 권영 정기자

“저, 기억하시죠?”
항상 새로운 정보를 찾아야 하고 새로운 취재원을 대해야 하는 기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요즘 내가 명함을 건네며 반사적으로 건네는 말이다.
내가 속한 기획취재부의 기사는 학내 문제를 발굴하고, 실상과 대책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학내에서 형성되는 문제의식 사이에는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내가 만나는 취재원은 항상 비슷한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매번 비슷비슷한 해명들을 들으러 찾아가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도 참 불편한 일이다.
업무가 엄청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조차 없을 것 같은데 미리 정리해둔 보도 자료를 건네는 교직원들을 볼 때면 도리어 내가 미안해지기도 한다. 물론 연락이 잘 안 돼 만나기 어렵거나, 어렵사리 만나도 취재에 응하지 않고 학내의 다른 부서를 대신 소개해 주는 취재원도 있다.
특히 세브란스의 소속문제나 대학평의원회의 구성 등과 같이 학생과 교직원, 학교는 물론 재단과 이사회까지 관련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기사가 신문에 실릴 때까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행여 기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취재원의 답변이 변질될까봐 밤새도록 미묘한 의미의 단어 하나로 고민했던 적도 많았다. 민감한 사안이라 더 어렵게 찾아간 취재원이 막상 말을 아끼는 곤혹스러운 상황도 겪었다.
물론 중앙도서관 앞이나 주차장, 혹은 강연장 뒤에서 만난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취재원도 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나조차도 무관심했을 문제에 대해 평소에도 생각하고, 또 성심껏 자신의 생각을 답하는 많은 학생들을 보며 내가 이들의 손에 들릴 신문을 만들 자격이 있는지를 반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3학기 기자 생활을 마쳐가는 지금, 기자라는 이름에 환상은 없다. 취재 후 사안이 별 문제 없이 원만히 진행 중이라고 밝혀지면 막상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 잘못된 것을 밝혀내야만 할 것 같은 고집에 아쉬움이 든 적도 있었고, 핵심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한 노하우까지 생겨버렸다.
내 삶에서 가장 활동적이어서 마치 10년과도 같았던 1년의 흔적으로 보기에는 열 개 남짓의 내 기사와, 30여 장의 취재원의 명함은 다소 실망스럽다. 취재 당시에 나에게는 CNN에 제보해야 할 것 같이 크게 느껴지던 소소하고도 수많은 사건과 또 갈등들은 이제 10여 장의 기사로 압축돼 전해될 것이다. 「연세춘추」 내의 다른 일을 하는 많은 부서의 질적인 업무 양이 모두 평등하듯, 춘추 기자로 활동한다고 해서 더 힘들 것이 없다는 것을 왜 더 일찍 깨닫지 못했는지 아쉽다. 기사 주제 선정부터 마지막으로 제목을 정할 때 까지 투덜대며 노곤함의 원인을 언제나 기자생활에서만 찾으며 춘추라는 이름 뒤에 숨기를 자처하던 기자가 비망록으로 옮길 만한 이야기가 딱히 있겠는가. 단지 내가 써온 기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진정 다 담아냈는지를 돌아볼 뿐이다.

/권영 기자 femmefatal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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