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현 편집부국장

2007년 11월 26일. 05학번에게는 이 날이 대학에 입학한지 딱 1,000일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나는 그 특별한 날을 맞는 05학번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사실 이 글을 읽고 “아니 벌써 이렇게 됐네!”하며 놀랄 05학번들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수의 동기들이 잠시 학교를 비운 채 외국으로, 혹은 고시촌 등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연세춘추」를 하다 보니 내리 6학기째 학교를 다니게 됐고 어느새 고학번이 됐다. 나는 그 6학기 동안 학교생활에 점점 더 무료함을 느꼈다(물론 정신없이 바쁜 신문사 생활은 무료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예외다). 과목마다 배우는 내용은 달랐지만 그것을 배우는 방식이나 평가하는 방식은 늘 비슷했기 때문이다. 조원들과 겨우겨우 시간을 맞춰 조모임을 하고, 때가 되면 발표를 하고, 레포트 혹은 쪽글을 쓰고. 시험기간이 되면 허겁지겁 친구들의 필기를 베끼며 공부하다가 다시 답안지에 옮겨 쓰고.
늘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매번 맞이하는 학기는 지난 학기와 다를 바 없었고, 다음 학기 역시 이런 상황과 비슷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을 느끼며 나는 지쳐갔다. ‘자유케 해주마’ 약속했던 진리는 학교 안에서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고, 오직 학교 밖으로 벗어날 수 있는 휴학만이 나를 자유케 해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휴학을 한다. 나를 가두던 팍팍하고 늘 똑같은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내게 되묻는다. “휴학하면 뭐 할건데?”
휴학을 하려면 무언가 거창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듯한 질문이다. ‘똑같은 생활이 지겨워서’라고는 했지만 사실 실컷 자고, 마음껏 책 보고, 여행하고 싶어서 하는 휴학인데 저런 질문에 당당할리 없다. 처음에는 뻔뻔하게 “실컷 놀거야”라고 답했지만 은연중에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차츰 휴학하고 할 만한 일들을 찾아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휴학하고 해야 할 것(만 같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인턴, 어학연수, 공모전, 각종 능력시험과 자격증들. 소위 취업을 위한 필수 요소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동안 내게는 너무도 먼 당신이었다. 쉬기를 두려워하는 취업준비생들을 일컬어 ‘공휴족(恐休族)’이라고 한다던가. 별 계획 없이 무작정 휴학했다가 시간 낭비만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은 나 역시 공휴족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황홀한 일탈로 생각했던 휴학이 오히려 일상보다 더 숨 막히는 존재로 변모하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다. 과연 이런 대학 생활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올시다’였다. 한번 생각해보자. 모두가 다 똑같이 취업을 위해 목숨을 건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치열해진 경쟁과 비정규직, 그리고 88만원의 봉급이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 뚜렷하게 알지 못한 채 남들에게 뒤쳐질까 두려워 영어, 학점 등에 매달리고 있다. 게다가 이토록 힘들게 준비해서 들어간 직장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대 직장인 3명 중 2명이 이직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라 한다. 이는 아마도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대학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알아내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말은 간단해도 이들은 사실 평생이 걸려도 찾기 힘든 것들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여러 방면의 경험, 그리고 먼 곳으로 여행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내게 휴학하고 뭐 할거냐고 묻지 마시라. 나는 휴학을 하고 ‘내 맘대로’ 살아볼거다.

/장지현 기자 zzanjj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