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환경기획으로 유명한 KBS 박복용 PD

‘미스 김 라일락’을 들어봤는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이 꽃은 놀랍게도 북한산에 많이 서식하는 ‘수수꽃다리’다. 이처럼 우리가 미처 모르던 들꽃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 KBS의 박복용 PD는 이러한 이야기를 ‘종(種)의 유출’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담아 국립수목원을 설립하게 만든 연출가다. 무심히 대하던 것들을 새롭게 담아내는 날카로운 그의 시선은 이처럼 조용히, 그러나 큰 영향력을 펼쳐나간다.

 

시청자는 나의 힘 박복용 동문(경제·83)은 중앙도서관에 가는 것이 감옥에 가는 것 같았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면서, 얼떨결에 PD가 됐다며 멋쩍게 웃었다. PD가 되는 일이 그 시절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겸손함이 그를 오늘날과 같은 빈틈없는 연출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그는 KBS 기획제작국에서 15년여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작년부터 ‘환경스페셜’을 맡기 전까지는 ‘일요스페셜’을 연출했다고 하니 이 방면에서 잔뼈가 굵은 셈이다. 어쩌면 그는 타고난 PD였나보다. 방송국 생활의 불규칙한 일과 때문에 가족들에게 소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는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만 제공하겠다는 신조를 갖고있다. “막상 방송되는 영상을 보면서 인식하지 못하는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밤샘작업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의 말에서 시청자에 대한 그의 정성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발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도 어렵지만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제일 어렵죠.” 그는 긴 시간 시사고발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으며 더 밝혀내려는 PD 자신과 감춰보려는 취재원 사이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완연한 의미를 추론해낼 수 있듯, 사람과의 소통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통역을 통하지 않고 오히려 짧은 영어라도 내가 직접 나설 때 취재원과 이야기가 잘 되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웃는 그는 인간미 있는 연출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가 한없이 부드럽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단도 지녔다. JP모건의 국제 금융사기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JP모건 스왑거래의 내막, 한국금융 어떻게 파산했나?’ 제작 당시, JP모건측에서는 1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까지 제기했을 정도로 상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 소송하려면 하라고 했죠.” 결국 그의 뚝심으로 다큐멘터리는 방송될 수 있었고, IMF 사태 이후 외국 자본이 밀어닥치던 그때 업계는 물론 대중에게도 국제 금융계의 실체와 위력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 다큐멘터리는 금융회사의 간부 교육 자료로 활용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후 JP모건 측에서는 “다른 회사도 많은데…”라는 애교 섞인 투정과 함께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고 하니, 그들도 그의 강단을 진작에 알아본 모양이다.

PD, 매력 그리고책임감

PD라는 직업의 장점을 묻자 그는 “원하는 프로그램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하지만 곧 그는 표정을 바꾸며 “나 하나가 게으르면 내가 손해보는 것이지만, 방송 제작은 그게 아니잖아요”라며 500만명 이상이 시청하는 방송을 만드는 연출자로서 느끼는 책임감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연출을 맡으며 50개국 이상을 방문해왔다는 그는 무엇보다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세계 각지의 경관은 물론이고 그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나름대로 세계화 교육을 받은 셈이죠.” 과중한 업무에 잦은 해외출장이라 투덜댈 수도 있는 부분에서조차 행복을 찾는 모습에서 그가 자신의 직업에 가지는 애착을 물론, 팍팍한 현실에서 여유를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할 수 있을 때 까지 해야죠”

언제까지 PD를 할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그는 “다큐멘터리 PD는 육체적 노동이 많아 오랫동안 하진 못하겠지만,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할 생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혹시 다시 심층취재를 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예전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찾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것보다는 주변 환경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라며 현재 진행 중인 환경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욕심을 보였다. 하지만 뒤이어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모르니 언제 또 다시 심층취재의 길로 뛰어들지는 모르는 일이죠”라고 덧붙이며 웃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캐내며 젊은 시절을 보낸 그에게 심층취재의 영역은 체력적으로 힘들고 소모적이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끼는 매력적인 대상인가보다.


진흙 속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정보를 시청자에게 영상 이미지를 통해 공중파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표현 논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면에 나타나는 구도적 균형 뿐 아니라 영상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논리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출자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 대신 오히려 논리적인 구성과 참신한 기획력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이에 경제학 석사인 그는 후배들에게 “문학과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영역의 교양서적을 자주 접하면서 철학과 논리적인 기본기를 키우면 좋겠다”며 영상세대라며 책을 멀리하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인 대학시절을 독서로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시간으로 활용하라는 말을 남겼다.


각종 시사고발 프로그램과 ‘종(種)의 유출’, ‘호치민루트’, ‘꽃의 전쟁’ 등 여러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 박복용 PD. 인터뷰를 마치고 편집실로 향하는 그의 등에는 방송언론인으로서 영향력 있는 작품을 연출하는 모습과 동시에 후배들을 위해 따뜻한 조언을 해주던 모습이 어려 있었다. 내년엔 아프리카에 수개월 동안 체류하며 또 다른 환경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예정이라는 그가 이번에는 어떤 작품으로 우리의 뇌리에 남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사공석,  권영 기자 chun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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