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역사 20년, ‘금융실명제’부터 ‘낙선운동’까지

시민사회는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시장사이에 존재하는 제 3의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와 시장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시민사회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 개개인이 국가와 기업을 상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시민이 시민단체를 구성해 시민사회의 주체로 역할을 꾀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어떤 모습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경실련, 시민운동의 출발을 알리다.

시민단체의 성격을 띤 최초의 단체는 지난 1989년에 세워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아래 경실련)’이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실현된 이후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공정한 경제 질서’를 기치로 세운 경실련의 등장은 시민운동의 변화를 예고했다. 경실련 커뮤니케이션팀 김미영 팀장은 “경실련의 사회운동은 합법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서민들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토지· 부동산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경실련이 주장한 ‘금융실명제’는 많은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후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될 정도였다. 이전과는 달라진 시민운동에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시민들의 호응속에서 1990년대 초반 새로운 시민단체들이 창립되거나 기존단체들이 시민단체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는 ‘환경운동연합’, ‘녹색교통운동’ 등이 이 시기에 설립됐다.

참여연대, 시민운동의 지평을 확대하다

그러나 경실련 주도의 시민운동과 경실련의 온건적 운동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다. 이에 몇몇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온건적 시민운동을 넘어서 사회를 개혁했던 80년대 민중운동의 정신을 계승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지난 1994년 ‘참여연대’의 설립이 이뤄진다. 참여연대 시민교육팀 정형선 간사는 “민주화 이후 제도적· 법률적 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참여연대의 설립 취지를 말했다.

경실련과 참여연대 모두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지만 구체적인 운동방법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는 두 단체가 주도한 집회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경실련이 당시 ‘집회시위에 관한 법’이 허용하는 내에서 시위를 했다면 참여연대는 이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1인 시위를 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여연대는 ‘맑은 사회 만들기 운동’, ‘사회복지분야에서의 국민생활기본선 확보 운동’ 등 이전의 경실련이 제기하지 못 했던 시민운동의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총선시민연대,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확인시키다

우리사회의 굵직한 사회 개혁안을 내놓은 시민단체는 2000년대에 이르러 좀더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성장한다. 지난 2000년에 실시된 ‘낙천·낙선운동(아래 낙선운동)’은 시민운동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당시 정당의 밀실 공천, 선거부정, 파행적 국회운영 등은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이었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끊임없이 노력했다. 지난 1999년 일부 시민단체는 ‘국정감사모니터링’을 실시했으나 국회는 이들의 활동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낙선 운동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 개혁을 시도한다.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 약 400여 개의 시민단체는 총선시민연대를 구성해 16대 국회의원선거에 낙선운동을 진행했다. 운동이 진행 되면서 1,000여 개의 시민단체가 총선시민연대에 가입했으며 낙선 대상자 86명 가운데 약 68%에 달하는 59명이 낙선했다. 시민단체가 유권자들의 표를 움직이는 폭발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선거문화의 변화를 꾀했지만 비판도 뒤따랐다. 이 운동은 명백히 선거법에 위반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내부에서 역시 낙선운동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실련 김 팀장은 “후보자 정보 공개에는 찬성했지만 이를 넘어선 낙선 운동은 유권자의 판단이지 시민단체가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경실련이 당시 낙선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현재 약 6,000여 개의 시민단체가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시민운동에서도 가지각색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사안에 대해 시민단체끼리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조경만 부장은 “여러 가지 목소리가 나올수록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우리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고 말한다. 20년 동안 놀랍도록 성장한 시민단체. 이들의 다음 발걸음을 기대해본다.

/신인영 기자 kongs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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