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쉬르 탄생 150주년 특별기획

   
▲ /이미지 디자인 석주희

현대 언어학을 정립하는 것을 통해 과거의 역사주의에 대비되는 구조주의를 창시한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소쉬르의 언어학은 기호학을 통해 학문사에 널리 파장을 던져 여러 분야의 사조를 마련했다. 그의 구조주의 개념들은 문학,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인문사회 분야뿐 아니라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됐다.
올해는 그가 185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4월 ‘한국기호학회’의 주최로 ‘소쉬르 탄신 1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그의 이론에 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규칙인 랑그와  행위인 빠롤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구분해 언어구조를 설명했다. 랑그는 개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언어를 지배하는 사회·심리적 보편체계다. 그렇기 때문에 고정적 · 불변적이다. 이에 반해 빠롤은 개인이 사용하는 표현수단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즉, 랑그는 무의식 수준의 언어구조이고 빠롤은 의식 수준의 말하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바둑의 규칙이 랑그라고 한다면 빠롤은 바둑을 두는 행위에 해당한다. 바둑의 규칙이 실제로 바둑을 두는 행위를 통해 사실로 재현되듯이, 랑그는 빠롤을 통해 실현된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소쉬르는 언어기호를 기능적 측면에 따라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과 시니피에(signifié, 기의)로 분류했다. 여기서 기표는 ‘표시하는 것’이란 뜻이고, 기의는 ‘표시되는 것’이란 뜻이다. 즉 시니피앙은 시각과 청각이 받아들이는 감성적 측면을 뜻한다. 예를 들면 ‘연세’라는 음성이나 ‘연세’라는 문자가 이에 해당된다. 그 낱말이 조금 다르게 발음되거나 ‘연세, 연세, 연세 ’처럼 다른 서체로 표현된다고 해도 의미는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다. 언어는 실체가 아닌 형식이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표현을 빌리면 언어는 ‘그 자체 내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는 자율적 체계’다. 덧붙이면, 언어기호는 본원적으로 정해진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체계 내의 다른 언어기호와의 차이에 의해 고유의 시니피에를 형성한다. 그런 식으로 언어기호들은 구분된다. 예를 들면 빨간신호등이라는 시니피앙은 파란신호등과 함께 있을 때 ‘정지’라는 의미의 시니피에를 갖게 된다.             

구조주의를 확립한 소쉬르

소쉬르는 프랑스 언어학계의 대부인 메이예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재 통용되는 술어의 전적인 부당성, 개혁의 필요성, 그리고 언어라는 것이 대체로 어떤 대상인지를 밝혀야 하는 일 - 이런 것들이 역사적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송두리째 망쳐버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언어라는 것이 어떤 대상인가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언어의 역사를 논하고 비교하는 것에 지겨움과 역겨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소쉬르는 그 당시 주류였던 언어학의 역사주의적 흐름에서 벗어나 구조주의의 시초를 세웠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모든 이론 분야에서 ‘구조’라는 개념은 필요에 따라 다르게 이해됐다. 그래서 분명한 정의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구조’라는 개념이다. 여기에 뚜렷한 해석의 모델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소쉬르의 언어이론이다. 그는『일반언어학강좌(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라는 책을 통해 ‘체계’, 즉 이후 ‘구조’라는 용어로 불리게 된 개념을 확립했다. 이는 그가 언어에 관한 통시적 접근법에 회의를 느끼고 공시적 접근법을 중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서 통시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정도’를 의미하고, 공시적이란 ‘같은 시대에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공시적 접근법의 중요성을 소쉬르는 체스에 비유해 강조하기도 했다. 체스게임의 출발과 진행을 전혀 모르고도 현재의 상황을 얼마든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체스게임이 규칙체계이듯 언어 또한 특정의 형식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언어의 각 요소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체계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일반언어학강좌』의 실제 집필자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좌』가 구조주의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소쉬르의 저작이 아니라 그가 재직하던 제네바 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고 후일 동대학에서 교수가 된 ‘바이(Charles Bally)’와 ‘세슈에(Albert Sechehaye)’가 소쉬르의 강의노트와 여러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해 출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바이와 세슈에가 생각하고 있던 구조주의 개념을 소쉬르의 언어이론에 덧붙여 펼쳤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들의 의도나 성향에 의한 내용상의 굴절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왔으며, 이때문에 ‘소쉬르 다시 읽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왜곡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소쉬르가 일반언어학의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구조주의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세기 후반 ‘후기구조주의’

20세기 후반부터는 소쉬르의 구조주의에 대한 재평가와 비판의 분위기가 활발해지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에는 이른바 ‘후기구조주의’ 내지 ‘탈구조주의’로 불리는 일종의 지적 운동이 확산됐다. 대표적으로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학, 루이 알튀세는 마르크르 사회학 이론, 미셸푸코는 사회 · 역사 비평, 자크 데리다는 해체주의 글쓰기, 롤랑바르트는 문학 · 문화 비평에 각각 소쉬르의 언어학을 접목시켰다. 특히 탈구조주의 학자인 자크 데리다는 문자언어보다는 음성언어를 중시하는 소쉬르의 언어이론을 ‘음성중심주의’ 내지 ‘로고스 중심주의’로 정의하면서 대대적인 비판을 가하는 가운데 특유의 ‘해체론(deconstructionism)’을 펼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데리다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글의 지위가 낮아지고 말에 특권이 부여된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처럼 소쉬르의 이론은 후기구조주의자들이 특정 목적에 따라 원용하면서 때로는 재해석되거나 왜곡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소쉬르 언어학이 그것과 출발점을 달리하는 여러 이론분파 사이에서도 담론의 대상이 될 만큼 그 성격이 열려있으며 파장효과 또한 매우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쉬르는 자신의 언어이론을 통해 언어학의 흐름을 역사주의에서 구조주의로 바꿨다는 점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타계한지 15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언어학이 현대 지성에 끼친 영향은 여러 학문 분파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처럼 언어학에서 소쉬르 만큼의 무게를 지닐만한 언어학자는 아직 없다는 점에서 1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소쉬르를 읽는다.
 

/조규영 기자 summit_k@yonsei.ac.kr

※ 이 기사는 소쉬르 탄신 150주년 기념 논문집인 『소쉬르의 현재성과 탈현대성』에 소개된 「소쉬르와 촘스키 : 두 유형의 구조주의」 논문을 실은 우리대학교 문경환(문과대·통사론/고전문헌학)교수의 도움을 받은 것임을 밝혀 둡니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