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체류자도 노동자…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네팔에서 온 파타로씨. 그는 돈을 벌기 위해 1년 전 한국에 왔다. 하지만 현재 그가 있는 곳은 일터가 아닌 병원이다. 파타로씨가 병원에 오게 된 경과는 다음과 같다. 지난 9월, 그는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폭행을 당해 직장을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사업주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일을 하지 않는다며 폭행을 했다. 파타로씨는 이 과정에서 이마와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 현재 이 소식을 들은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아래 이주노동자노조)’는 파타로씨의 사업주를 고발한 상태다.
이 같은 사건은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사건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를 도와주는 곳이 인권 단체가 아닌 ‘이주노동자노조’라는 것이다. 파타로씨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이아무개(43)씨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있었나”라고 되려 묻는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요구한다

이주노동자노조의 공식 명칭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다. 지난 2005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0200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해 현재 300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주체가 돼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이주노동자 조합이 갖는 의의는 크다. 이주노동자 노조 가풍 위원장은 “한국의 이주노동자노조는 다른 나라의 이주노동자 노동운동에 큰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힘을 모으게 된 계기는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명동성당에서 새로 추진되고 있던 ‘고용허가제’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 농성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흩어져 있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합칠 필요성을 느꼈고, 이후 이주노동자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주노동자노조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최근에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퇴직금을 요구한 이주노동자 아햐씨가 단속반에 잡혀간 사건이 발생했다. 퇴직금을 주기 싫은 사업주가 그를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한 것이다. 이에 이주노동자노조는 사업주와 무차별적으로 이주노동자 단속을 강행한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집회를 가졌었다. 이런 사건은 한 둘이 아니다. 이에 대해 가풍 위원장은 “현재 정부가 현실성 없는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체계를 구축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3년 동안 일을 한 후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만약 이주노동자가 3년 이상 일을 하고 싶으면 미등록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풍 위원장은 “많은 비용을 들여서 왔는데 3년 동안만 일하고 돌아갈 이주노동자가 어디 있겠냐”며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미등록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등록체류자는 모일 수 없어?

이렇듯 이주노동자노조는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에서는 조합원 대부분이 미등록체류자라는 이유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주노동자노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노동자노조 백선영 사무차장은 “비판집회를 열지만 노동부에서는 이런 집회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햐씨의 사건 해결을 위해 수원지방노동청은 면담을 마련했으나 이주노동자노조가 참석하는 것은 거부했다. 그러나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불법 체류자도 고용관계를 맺은 근로자인 만큼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아 노동부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에 노동부는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한양대 법학과 강성태 교수는 “임금을 받고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면 성별·인종·국적·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노동3권을 가질 수 있다”며 “이주노동자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주체가 돼 모임을 조직하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야간, 주말에도 일을 계속해 모임을 갖기 힘든 상황이다. 또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가입할 수 있는 노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노조는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지부의 조합원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추진 중이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가풍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다”며 “이주노동자노조를 지속적으로 알려 대중 조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노동자로 바라봐야…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노조에게 힘든 것은 사회의 시선이다. 백 사무차장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주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할 수 있나’라는 의문을 가진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등록체류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다. 미등록체류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가풍 위원장은 “이주노동자 역시 돈을 받고 일하는 똑같은 사람이다”라며 “한국에서는 사람보다는 법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신인영 기자 kongs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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