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에는 지리정보뿐 아니라 그 당시의 사상이 담겨있다. /사진 조형준 기자 soarer@ 배낭여행을 떠나는 당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분의 옷가지와 충분한 경비, 비상약품도 중요하지만 절대 빠뜨리질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지도’다. 상세하고 정확하게 나와 있는 지도 하나만 있다면 어지간한 길치가 아닌 이상 초행길에도 천군만마 부럽지 않은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안내서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어졌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최신식 전자제품이라도 제품 설명서 없이는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듯, 낯선 곳에서 지도가 없다면 우리는 길 잃은 미아나 다름없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리정보과 이하준 사무관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국토와 생활공간이 더욱 복잡하고 다변적인 형태로 변화됨에 따라 지도를 활용하는 범위도 훨씬 대규모적으로 변화됐다”고 말한다. 지도는 이제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쉽고도 안전한 지름길을 제시해 주는 안내서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도는 언제부터 인류와 함께 했을까? 지도의 발자국 대부분의 학자들은 지도의 기원을 인류의 탄생과 함께한 것으로 본다. 고대인이 자신과 주변 지역을 이해하려는 열망으로 이를 기록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후세에 전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인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적절한 재료를 사용해 유용한 지도를 만들어냈다”는 지도박물관 황상진 관리팀장의 말처럼 그들은 나무판, 조개껍데기 심지어 동물가죽 위에도 지도를 그렸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지도인 바빌로니아 세계지도 역시 손바닥만한 점토판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그려진 고지도들의 일부는 현재까지 보존돼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인류는 그들이 직접 봤거나 알고 있는 것만을 지도로 남긴 것은 아니다.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그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천하도’는 상상의 원형지도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천하도에 그려진 조선, 중국, 일본은 실제 존재하는 나라이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상상의 나라다. 여인들만 사는 여인국, 군자들이 모여 산다는 군자국, 불사신들만 있다는 불사국 등 지금의 관점에서보면 황당무계한 나라들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지도란 모름지기 사실과 정확성을 가져야 한다는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천하도에 지도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지도는 단순히 지형의 복사가 아니라 당시의 세계관까지 담고 있다”는 황 관리팀장의 말에서 오늘날의 고정화된 의미에서 탈피해야 함을 알 수 있다. ▲ 우리나라 지도제작의 아버지, 김정호 /사진 조형준 기자 soarer@

김정호는 국가기밀누설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지도의 기능은 지도제작자의 이야기들을 통해 더욱 확실해 진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과학적 실측지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22첩으로 된 목판지도다.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년에 걸쳐 집대성한 그의 대작은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역사상 대표적인 지도학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전설 같은 일화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그의 사망에 대한 추측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옥사설’이다. 개인의 지도제작을 금하던 당시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았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해 흥성대원군에게 바쳤는데, 그 무섭도록 정밀한 지도를 본 대신들이 국가 기밀 누설의 죄를 씌워 옥사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지리서가 현재까지 보존된 점 등을 미뤄보면 신빙성이 적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지도가 국가기밀에 속하는 대단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지리학자 메르카토르는 그가 만든 지도 때문에 진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사람이다. 16세기 유럽은 종교 전쟁의 피바람이 몰아치는 혼란과 격변 속에 있었다. 신교도였던 그는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을 탈출하는 여정을 묘사한 지도에서 그의 신앙을 드러냈는데 이것이 가톨릭 교단의 미움을 샀다. 당시 이 여정은 주로 개미만한 크기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으며 홍해를 건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에 반해 양옆으로 넘실대는 파도를 그려 넣어 보는 이가 이스라엘 사람의 급박한 처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메르카토르의 지도는 색다른 시각이었다. 이는 누구나 성경을 읽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다는 신교도들의 이상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보면 지도가 갖는 의미와 역할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으로 보는 지도

복잡한 기호와 등고선이 그려진 지도. 이것은 우리가 지도를 떠올릴 때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태다. 하지만 역사가 오랜 만큼 지도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이하준 사무관은 “지도는 표현하는 대상에 따라 크게 지형도와 주제도로 나눌 수 있다”면서 “지표면의 지형과 수계, 도로·철도와 같은 시설물 등의 형태와 분포를 표현한 것이 지형도이며 특정 주제만을 표현한 것이 주제도”라고 말한다. 즉, 토지이용도나 기후도, 교통도 관광도와 같이 특정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는 지도는 주제도이며 대한민국전도, 세계지도 등이 지형도라 할 수 있다.

바야흐로 기술 혁명의 시대인 지금, 지도제작 기술도 놀랍도록 발달하고 있다. 항공 사진술, 인공위성,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출현으로 지도의 형태는 지면에서 화면으로 바뀌었고, 지도 위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사회 지도층만 지도를 소유할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일반인도 쉽게 지도를 접하게 되면서 지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발전의 이면이 늘 그렇듯 지도의 대중화에도 소외된 계층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공간의 시각화’라는 지도의 첨단 기술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혜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음성지도, 점자안내지도의 개발은 냉정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충분히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지도, 만일 그것이 무지하고 연약한 인류를 위한 신의 축복이라면 모든 인류에게 골고루 미치길 기대해본다.

/글 강조아 기자 ijoa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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