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는 국가기밀누설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지도의 기능은 지도제작자의 이야기들을 통해 더욱 확실해 진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과학적 실측지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22첩으로 된 목판지도다.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년에 걸쳐 집대성한 그의 대작은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역사상 대표적인 지도학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전설 같은 일화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그의 사망에 대한 추측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옥사설’이다. 개인의 지도제작을 금하던 당시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았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해 흥성대원군에게 바쳤는데, 그 무섭도록
정밀한 지도를 본 대신들이 국가 기밀 누설의 죄를 씌워 옥사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지리서가 현재까지 보존된 점 등을 미뤄보면 신빙성이 적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지도가 국가기밀에 속하는 대단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지리학자 메르카토르는 그가 만든 지도 때문에 진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사람이다. 16세기 유럽은 종교 전쟁의 피바람이 몰아치는 혼란과 격변 속에 있었다. 신교도였던 그는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을 탈출하는 여정을 묘사한 지도에서 그의 신앙을 드러냈는데 이것이 가톨릭 교단의 미움을 샀다. 당시 이 여정은 주로 개미만한 크기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으며 홍해를 건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에 반해 양옆으로 넘실대는 파도를 그려 넣어 보는 이가 이스라엘 사람의 급박한 처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메르카토르의 지도는 색다른 시각이었다. 이는 누구나 성경을 읽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다는 신교도들의 이상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보면 지도가 갖는 의미와 역할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으로 보는 지도
복잡한 기호와 등고선이 그려진 지도. 이것은 우리가 지도를 떠올릴 때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태다. 하지만 역사가 오랜 만큼 지도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이하준 사무관은 “지도는 표현하는 대상에 따라 크게 지형도와 주제도로 나눌 수 있다”면서 “지표면의 지형과 수계,
도로·철도와 같은 시설물 등의 형태와 분포를 표현한 것이 지형도이며 특정 주제만을 표현한 것이 주제도”라고 말한다. 즉, 토지이용도나 기후도,
교통도 관광도와 같이 특정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는 지도는 주제도이며 대한민국전도, 세계지도 등이 지형도라 할 수 있다.
바야흐로 기술 혁명의 시대인 지금, 지도제작 기술도 놀랍도록 발달하고 있다. 항공 사진술, 인공위성,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출현으로 지도의
형태는 지면에서 화면으로 바뀌었고, 지도 위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사회 지도층만 지도를 소유할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일반인도 쉽게 지도를 접하게 되면서 지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발전의 이면이 늘 그렇듯 지도의 대중화에도 소외된 계층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공간의 시각화’라는 지도의 첨단 기술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혜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음성지도, 점자안내지도의 개발은
냉정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충분히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지도, 만일 그것이 무지하고 연약한 인류를 위한 신의 축복이라면 모든
인류에게 골고루 미치길 기대해본다.
/글 강조아 기자 ijoa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