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에펠탑 꼭대기. 그곳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앉아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공연을 편집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한다. 88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을 보고 있는 세계인들은 숨죽이며 전세계의 통합을 역설하는 백남준의 영상을 본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위성 3부작 중 하나인 ‘손에 손잡고’라는 작품으로 그가 예술을 TV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지난 오늘날, 예술가들은 이제 예술을 인터넷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김치샐러드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윤명진씨는 일상적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kimchisalad.net)에 올리고 있다. 그의 작품 소재는 대부분 단무지나 순대, 녹차 등의 음식이다. 그는 음식에서 연상되는 특징을 통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현실세계의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뜨거운 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풀어주고 버려지는 녹차티백에 비유하는 식이다(작품명‘녹차군’). 그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좌절을 뜻하는 ‘OTL’을 직접 몸으로 표현하고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넷 예술은 단편적이고 일상적인 느낌만을 표현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예술보다 가벼워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임정택 교수(문과대·독문학)는 “인터넷 예술이 다소 가벼울 수 있으나 그렇다고 부정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고 말한다. 인터넷 예술은 변화하는 현실을 신속히 받아들여 새로운 수용자들의 감각을 따라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임 교수는 “순수 예술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진지한 인터넷 예술 활동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영혜중공업(http://www.yhchang.com)’은 장영혜씨와 마크 보주씨가 결성한 웹아트 그룹으로 중공업이라는 이름처럼 무게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들은 텍스트를 사용해 역동적인 음악과 적나라한 문체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SAMSUNG'이라는 작품에서는 ‘내 작품과 내 삶은 침묵을 거부한다’는 문구를 내세우며 절대권력을 가진 대기업 삼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대중과 만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매체로 인터넷을 활용하는 듯 보인다.

예술은 더 이상 고상하고 잘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예술은 대중에게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그동안의 예술이 형식과 진지함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인터넷 예술을 통해 다소 가볍더라도 즐길 수 있는 예술 역시 각광받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언제나 인터넷으로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대다.

/양아름 기자 diddpq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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