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에서 미술 작품을 보면서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에 오게 됐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상설 전시를 실시하는 미술관이 드문 우리나라의 경우, 작품을 대여해 일정 기간 선보이는 기획전시가 많다. 인기 있는 외국 유명 작가의 전시뿐만 아니라 삼청동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시회까지 대부분의 전시기획(전시가 이뤄지는 과정)이 갖추고 있는 골격은 비슷하다. 서울시립미술관 최흥철 학예연구사(큐레이터)는 “전시란 작품, 조직, 전시장, 관객이라는 네 가지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물론 전시기획이 한 가지 모습으로만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들이 ‘산 넘고 물 건너’ 우리와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 /그림 손혜령

1. 발의
전시기획은 학예연구사의 ‘발의’로 시작된다. 이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갗를 논의하는 단계로, 미술관 측과 외부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미술관 측에서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학예연구사의 연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전시의 주제를 설정한다. 이 과정에서 전시가 시의성이나 대중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실현은 가능한지 등이 고려된다. 외부적으로는 예산이나 작품 대여료를 책정하고, 전시 작품의 소재처 파악이 이뤄진다. 파악 후에는 미술관 시설의 적합성을 평가하는 ‘시설 보고서(Facility Report)’를 작성해 소장 미술관과의 대여 여부에 대해 지속적인 연락을 취한다. 올 여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던 ‘클로드모네전’과 같은 외국작품 대여전시는 준비기간만 수년이 걸린 전시다. 관람객이 보기엔 단기간에 차려진 멋진 밥상으로 보이겠지만, 준비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발의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전체 전시기획 중 가장 길다.

2. 기본결정
발의를 통해 어떠한 전시를 기획할지가 결정되면, ‘기본결정’으로 넘어간다. 전시가 확정됐으므로 의도를 분명하게 실현하기 위한 계획서를 작성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계획서는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되는데, 이에 따라 작갇작품·전시 장소·기간·예산·주최자 등을 정한다. 그 다음에는 이에 기반해 항목별로 구체적인 실행 안을 수립해 나간다. 그러나 모든 항목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전시의 특징이나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된다.

3. 최종결정
이어지는 ‘최종결정’에서는 ‘발의’와 ‘기본결정’에서 설정한 목표와 실행 안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이 단계는 크게 보험과 운송, 조직 구성, 예산 확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도난이나 파손의 위험에 민감하므로 확실한 보험처리와 운송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는 작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보험회사와 운송회사를 통하게 된다. 운송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상태를 체크하는 것(Condition Check)인데, 작품 훼손 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예산을 편성하고 확보하는 것은 전시의 규모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외국의 경우 미술관에 예산을 담당하는 자금 조달자(Fund Raiser)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예연구사가 이를 담당한다. 미술관이 전체 예산을 충당하지 못할 시에는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협찬, 협력 등의 추진기관을 조직한다. 방송국이나 대기업 등이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데 추진기관이 결정되면 전시회 홍보나 실무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4. 실무
마지막으로 전시 관련 ‘실무’가 진행된다. 제일 먼저 전시장에 작품을 배치하기 전에 테마에 맞게 공간을 조성한다. 신사동에 위치한 ‘스페이스 집’은 지난 2003년 열린 'Dreamy Hive'라는 전시를 통해 일반 가정집을 멋진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경우다. 공간 조성 뒤 이뤄지는 배치작업 역시 작품 크기뿐 아니라 작품이 가진 성격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최흥철 학예연구사는 “기획자의 철학과 작가들의 아이디어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목적에 부합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전시 못지않게 중요한 도록(圖錄)이 출판되는데, 발의 단계에서 진행된 학예연구사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진 도록이 만들어진다. 또한 홍보의 일환으로 전시에 걸맞은 여러 가지 이벤트를 실시한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관람하면서 숨은 재미를 찾는 것이나 매 시간 진행되는 도슨트(작품 설명을 위한 전문 도우미)의 무료 전시 설명은 이제 일반적인 전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관심이 높아진 만큼 관람객들이 올바른 시각으로 작품을 관람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프로그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전시회는 관람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미술계의 성수기라는 10월, 당신 앞에 놓여있는 명작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 보면서 전시회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이승희 기자 unique_hu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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