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예술연구회의 위대한 성과 뒤에는 피나는 연습이 있었다. /사진 홍선화 기자 maximin@

청순하면서도 새침한 소녀와 답답하면서도 순박한 강원도 소년. 그리고 다섯명의 깜찍한 도깨비들이 뭉쳤다. 풋풋한 사랑을 하는 소년과 소녀는 가슴을 설레게 하고 도깨비들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자, 이제 황순원의 잔잔한 원작소설에 발랄하고 창의적인 매력까지 더한 ‘극예술연구회’의 라이브뮤지컬 『소나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원작에는 없는 도깨비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극예술연구회의 『소나기』는 학생들이 직접 각색한 작품이다. ‘보라색은 소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 ‘조약돌은 소년에 대한 소녀의 관심’이라며 분필로 칠판을 탁탁 치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설명은 잊자. 연출을 맡은 윤혜숙(중문/심리·04)씨는 “요즘 학생들이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아쉬움에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각색을 통해 마음이 외로운 소녀와 신체적 결함을 가진 소년이 만나서 서로 아껴주는 이야기를 펼친다.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사랑에 익숙해있던 현실 속에서 소년소녀의 때묻지 않은 사랑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준다.

음악도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고 연주한다. 뮤지컬『싱글즈』,『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편곡에 참여하기도 한 음악감독 조은미(작곡·03)씨는 “연출자와 한자리에 앉아 음악의 느낌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작업했다”며 덕분에 외부작업보다 편안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배경음악도 보통의 뮤지컬처럼 녹음테이프를 트는 것이 아니라 무대 한 쪽 옆에서 피아노와 아코디언, 실로폰으로 직접 연주한다. 악사뿐 아니라 도깨비들도 생동감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오카리나와 손으로 새소리를 내기도 하고 모래주머니로 빗소리를 내기도 한다.

등장인물의 연기는 뮤지컬의 압권이다. 자신이 죽고 나서 소년을 산채로 함께 묻어달라던 영화『엽기적인 그녀』의 각색만큼 재미있을 수 있는 이유는 등장인물이 배우의 연기를 통해 생생하게 호흡하기 때문이다. 가방끈을 매만지며 소년을 바라보는 새침데기 같은 소녀는 관객들을 웃게 만들고, 소녀의 죽음에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 없이 우는 소년은 관객이 함께 울게 만든다. 소년과 소녀를 이어주기 위해 장난치며 해맑은 미소를 던지는 도깨비들은 절로 뮤지컬에 몰입하게 만든다.

『소나기』는 불이 꺼지고 무대를 다시 만드는 시간이 없다. 도깨비들이 직접 소년과 소녀의 로맨스를 만들어주는 꽃이 되기도 하고 시냇물에 징검다리를 놓기도 하며 무대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개구쟁이 도깨비들이 연극 중간에 무대를 바꾸는 이런 새로운 형식은 어설프지 않은 신선한 시도로 다가온다.

다섯 시간이 넘게 이뤄진 연습은 마치 긴 마라톤을 보는 듯 했다. 쉴틈없이 연습하다가도 연습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신나게 웃는다. 그러다가도 대사와 몸짓에 대해 말하며 다시 진지한 분위기로 변한다. 연습이 해이해지자 연출 윤혜숙씨가 배우들에게 다가가 “으이구, 공연 할거에요?”라며 핀잔을 준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박준영(작곡·07)씨는 “다들 힘든 걸 알기에 강압적으로 연습하기보다 서로 다독이며 연습한다”고 말했다.

극예술연구회는 이번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5시간씩 연습했다. 도깨비 만남 역의 최예슬(영문·05)씨는 “공연을 만들어가는 게 기적같다”며 웃는다. 소녀 역의 권민희(식품영양·05)씨도 “의상과 소품 하나하나까지 없던 것을 만들어내다 보니 치밀해지게 된다”며 거든다. 친구 만날 시간도 없이 연습에 매진하면서도 즐겁게 공연하는 그들을 보며 진정으로 창작의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가지 기쁜 소식이 있다. 우리 학생들의 정성스러운 손으로 준비한 뮤지컬 『소나기』가 ‘전국대학뮤지컬페스티벌’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연극영화과의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본선 진출작 중에 아마추어 동아리로서 유일하게 진출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처음 만날 때의 설렘을 기억하며, 옆 자리가 빈 사람이라면 다가올 사랑을 기대하며 뮤지컬『소나기』를 보러 가는 건 어떨까. 오는 7일(일) 의정부 예술의 전당 소극장.의정부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양아름 기자 diddpq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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