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현 학술부장

신정아씨의 학력 및 논문 조작사건이 세간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는 요즘, 이제 ‘신정아’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논란보다는 ‘학력 위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명 만화가 이현세씨는 최근 출간된 골프만화 『버디』 3권의 서문에서 고졸인 자신의 학력을 대학 중퇴로 속였다고 고백했다. 과거 『까치와 엄지』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후 “어느 대학을 나왔냐”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되자 차마 고졸이라는 대답을 하기가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만화가를 낮춰보는 사회풍조가 있었던 그 시절에 선뜻 고졸이라는 대답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부끄러움을 피하고자 했던 그때의 거짓말은 그에게 25년간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됐다.

7년 동안 KBS 라디오 ‘굿모딩 팝스’를 진행한 이지영씨 역시 학력을 속인 것이 드러나 도중하차하게 됐다. 그녀는 2004년 KBS TV·라디오부문 최우수 MC상을 거머쥐기도 했던 인기 영어강사였지만 학력 위조 앞에서 그녀의 실력은 색이 바래고 말았다.

KBS ‘굿모닝 팝스’ 게시판에는 이지영씨의 이번 일을 두고 누리꾼들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학력이 뭐가 중요한가,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반응부터 ‘청취자를 기만했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내 이럴 줄 알았지. 어쩐지 실력이 의심스러웠어’라는 반응이다.

물론 나 역시 이지영씨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길 없으므로 저 의견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력이 ‘고졸’이 된다고 능력까지 ‘고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긴 ‘대졸’이 ‘고졸’보다 낫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됐는지 모른다. 학력이 허위였다는 것이 드러난 뒤 실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데 학력이 그렇게나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이 학력을 위조한 것까지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력을 위조한 것이 어째서 언론에서 이만큼 크게 거론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지를 주목하고 싶다. 사람들을 속였다는 도덕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학력을 위조했다는 사실은 그 이상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것은 학력과 능력을 마치 한 몸 인양 여기고 있던 사람들이 학력에 속음으로써 능력에까지 농락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학력을 속인 것은 학력을 속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말이다.

학력 위조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학벌 중시 풍조를 없애자는데 목소리를 높이고, 응시자의 정보를 일체 보지 않은 채로 ‘블라인드 면접’을 보는 회사가 늘고 있는 요즘 추세와 상반된다. 만약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가 없다면 학력을 위조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학력 위조’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학벌주의가 건재함을 엿보게 하는 단면이다.

이미 만화가 인기를 끎으로써 실력을 인정받은 후였지만, ‘학벌’이라는 지지대가 뒷받침되지 않았기에 떳떳할 수 없었다는 이현세씨나 인기강사로서 KBS 간판 프로그램을 7년간 진행해왔지만 학력을 위조했기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이지영씨, 이들은 학벌이라는 거대한 굴레 속에 얽매여버린 희생자가 아닐까. 우리는 이들이 학력을 위조하게끔 만든 원인제공자가 누구인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글 장지현 기자 zzangjj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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