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포유류 큐레이터 안정화씨

그녀의 직장인 서울대공원을 찾은 날, 마침 많은 비가 내려 동물원으로 향하는 코끼리 열차는 기자 두 명만을 태우고 출발했다. 하지만 낯설게도 매번 낮잠만 자던 우리 안의 동물들은 단비를 흠뻑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동물원이 가장 재미있는 때가  오늘처럼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라며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반겼다.

“포유류 큐레이터가 뭐죠?”

서울대공원 포유류 큐레이터 안정화(30)씨를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동물원 큐레이터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동물원 큐레이터는 일반적인 큐레이터가 전시물을 설명하듯 동물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직접 동물을 다루는 사육사와 사무실의 사이에서 이들의 관계를 조율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한다.

특히 포유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포유류 큐레이터인 그녀는 동물 사육 매뉴얼을 만들고 ‘행동 풍부화’ 과정의 일환으로 동물들이 야생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돕는다. 또한 직원 교육과 동물 관련 전시 프로그램 기획 등 한 사람이 해내기에는 버거울 것 같은 일을 오늘도 멋지게 해낸다. 이전까지 동물을 사육하는 방법은 선배 사육사들의 경험으로 전해질 뿐 체계적인 자료는 없었다. 구전되는 노하우에만 의존해왔기 때문에 폐사되는 동물의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동물이 서식하는 대륙을 기준으로 일괄 분류해 사육하다 보니 야생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 우리 나라의 동물원 상황에 맞는 사육 매뉴얼을 만드는 그녀의 업무는 동물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화된 기록을 남겨 사육사와 동물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준다. 동물 우리 안에 고사목을 넣거나 바닥에 모래나 건초 등을 깔아놓는 것은 최대한 야생과 비슷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먹이를 숨겨놓는 등의 작업을 통해 동물들이 기본적인 수준의 운동을 통해 야생의 습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  또한 그녀의 업무 중 하나다.

그녀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 “최초”

외국에서는 이미 업무별로 세분화된 큐레이터가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녀가 최초의 동물원 큐레이터다. 대학에서부터 생물학을 전공한 그녀는 자신의 전공지식과 수집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관람객보다 동물을 우선으로 하는 동물원을 꾸려가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동물들의 건강한 생활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즐거운 관람도 가능해 지기 때문에 그녀의 업무는 책임이 크다. 이어 그녀는 서울대공원을 친환경 동물원으로 개선하는 계획도 마련돼있다고 살짝 귀뜸했다.

포유류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빼고도 그녀의 삶은 평범치 않다. 그녀는 지난 2006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과정에지원해 30명의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상대적으로 여성 도전자가 적었을 뿐 아니라 특이한 이력 때문에 언론의 쉴새 없는 인터뷰 요청으로 한동안 바빴다고. 그녀의 삶은 이처럼 도전으로 가득하다. 동물원 큐레이터로 일하게 된 것도 박사 과정 중에 우연히 접한 채용공고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그녀가 수많은 도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가 되기 전 연수차 1년 여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며 동물원 실무 경험은 물론 영어실력까지 얻어 돌아왔다. 아직은 국내에 동물원 큐레이터의 사례가 없어 외국의 자료를 자주 참조해야 하므로 풍부한 실무경험은 물론 유창한 영어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을 찾는 외국 인사들을 안내하는 역할도 그녀가 해낸다고 하니 그녀가 동물원 큐레이터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취미도 색다르다. 동호회원들과 함께 하는‘동굴 탐사’가 그녀가 여가를 보내는 수단이다. 7년 전 대학을 졸업한 후 교수님을 따라 첫 탐사를 다녀온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강원도 일대의 석회굴을 탐사해왔다. 수직굴을 탐사하다 보면 안전장비를 갖춰도 위험한 상황이 더러 생기지만 이제는 한 번이라도 탐사를 거르면 몸살이 날 정도라며 웃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녀를 걱정하던 가족들도 동굴 생명체들의 특이한 생활 방식을 관찰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이제는 동굴탐사를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를 즐기고 멋진 결과를 얻는다

매사를 ‘즐기자’는 생각으로 쉴 새 없이 도전하는 그녀는 열정적이다. 게다가 그녀가 결국 멋진 결과를 얻어내는 모습은 더욱 멋지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는 좀 편하게 살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녀의 삶은 성공한 도전들을 딛고 더 새로운 도전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다. 이런 그녀에게는 항상 동물 걱정뿐이다. 매일 수원에서 과천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자가용은 앞으로도 사지 않을 거라는 그녀의 웃음에는 진정 동물과 자연에 대한 애착이 묻어난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지만 정작 강아지 한 번 키워본 적 없다는 그녀. 이제는 멸종위기의 동물을 포함해 수많은 동물을 돌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꾸었던 꿈도 이제는 멋지게 이뤄낸 셈이다.

청바지에 운동화, 장우산을 받쳐 든 수수한 그녀가 오월의 신부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던 날. 내일은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할지 고민하며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려가는 그녀가 진정으로 멋지다.

/ 글 권영 기자 femmefatale@yonsei.ac.kr
/ 사진 김영아 기자 imstaring@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