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점수’를 위해 공부하는 대학생의 실상을 진단하다

“방학계획이요? 영어공부죠.”

대학생들의 방학계획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쯤은 당연한 일로 인식된다. 이는 대학생의 경우만이 아니다. 중·고등학생이나 직장인들도 영어학원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다. 방학과 동시에 영어학원은 빈자리가 없이 꽉 들어찬다. 또한 인기강좌의 경우 빨리 마감이 되기 때문에 일찍 등록하지 않으면 안된다. 영어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높은 관심은 방학 기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체 많은 사람들은 왜 영어공부에 이렇게 집착하고 있는 걸까.

토플- 대란(大亂)이 일어나다

“교환학생이나 유학, 대학원 진학에도 토플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토플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한 윤다정(중문·05)씨의 의견이다. 우리대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교에서도 교환학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토플 시험의 수요도 이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토플을 두 번 봤다는 김 아무개(영문·05)씨는 “서울의 시험장이 다 차서 부산까지 갔다온 적이 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렇게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시험을 보는 ‘원정토플’을 보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래도 국내에서 시험을 볼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일본이나 대만 등 외국에서 시험을 보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토플 시험 접수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날짜나 시각에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게릴라 형식으로 이뤄지는 토플의 접수 방식은 급기야 5월에는 접속자수가 너무 많아 서버가 다운되면서 ‘토플 대란’까지 빚었다. 이에 토플 주최측인 ‘ETS’의 부사장이 한국을 방문해 해명을 하고 한국만의 특별한 접수절차를 별도로 공시하는 등 토플과 관련된 해프닝은 끊이질 않고 있다.

토플 시험은 응시료도 만만치 않다. 응시료는 $1백70로 우리돈으로 약 16~17만원 가량이다. 시험 응시료치고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금액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심지어는 해외원정시험까지 불사하고 있다. 위의 김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두 번의 시험 응시료 32만원, 교통비와 식비 등 기타비용을 합해 10만원, 이렇게 해서 토플시험을 보는데만 총 42만원을 지출했다. 토익과 텝스의 응시료가 각각 3만 4천원, 3만원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 또한 외국에 가는 경우라면 총 시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최근에는 토플 해외연수패키지 상품을 출시하는 여행사나 유학업체도 등장했다고 한다. 한번에 1백만원이 넘는 높은 비용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요에 힘입어 토플 해외원정상품은 계속 출시되고 있다.

토익-여전히 그 실세를 자랑하다

 비단 토플뿐만이 아니다. 꼭 토플 시험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토익을 배우기 위해 영어 학원을 찾는다. 지금은 다소 시들해졌으나 토익의 영향력 또한 여전히 강하다.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는 대부분 토익 시험을 준비한다. 토익은 지난 1982년에 도입된 이래로 가장 대중적인 영어능력시험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토익의 응시자 수가 2004년 1백84만여명, 2005년 1백86만여명, 2006년 1백92만여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토익 위원회에서 제시한 자료에서도 입증된다.

고시에 응시하거나 회사를 입사할 때 영어능력에 대한 검증을 요구한다. 이 때 사람들은 대개 토익을 택한다. 그 이유는 “토익이 제일 쉬운 시험인 것 같다. 외우기만 하면 금방 성적이 오른다”는 나희선(법학·05)씨의 말처럼 비교적 고득점이 쉽기 때문이다. 문제은행 형식으로 출제되는 토익은 응시 횟수가 많아질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때문에 토익 점수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크게 심화됐다. 만점자 수가 점점 증가하고 시험 형식이 지나치게 유형화돼 암기로 풀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토익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석주희

영어인가 영어시험인가

“꼭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항상 영어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하고 초조하죠.” 종로의 한 어학원에서 토플을 수강하고 있는 김 아무개(22)씨의 말이다. 김씨처럼 많은 학생들이 꼭 목적이 있지 않더라도 영어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잘하면 후에 취업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영어 능력이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영어는 또 다른 서열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2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한국 학생들의 영어 배우기는 상상을 초월한 광풍, 그 자체이며 영어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확실한 돈벌이를 보장한다’고 보도했다. 우리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영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영어공부’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영어시험’을 위한 투자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때문에 영어시험에 대한 투자가 영어능력을 보장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된지 오래다. 지금 우리에겐 영어공부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진지하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김세정 기자 ksj1786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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