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밤길을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다

“즐겁구나, 즐거워!  핫팬츠 입고 밤길 다닐 수 있게 보장하라! 보장하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신촌 길거리에서 노란 옷을 입은 행진대가 신나게 소리를 외치고 있다. 구호와 함께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를 울리는 이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밤길 되찾기 시위(아래 달빛시위)’의 거리행진 광경이다. 지난 6일, 우리대학교 정문 앞에 30여명의 여성들이 달빛시위의 거리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꽃장식을 하고 노란색 옷차림으로 나타난 이들의 발랄한 모습은 일반적인 시위대의 모습과는 달라보였다. 모두들 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반겼다. 30분 후 이들은 서울역을 항해 거리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달빛시위는 성폭력의 심각성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이에 대한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사회 통념을 비판하기 위한 행사다 ‘여자는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우리사회의 금기는 여성들이 밤길을 공포로 인식하게 만든다. 달빛시위는 이런 금기를 깨기 위한 여성들의 작은 발걸음이다. 달빛시위가 개최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과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방식에서 비롯했다. 당시 언론은 세상을 놀라게 한 살인사건의 원인을 여성들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여성단체들은 달빛시위를 개최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이 규모는 커져가고 있다.

달빛시위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이 거리행진대가 나눠주는 팜플렛을 주의 깊게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행진을 지켜본 주미정(35)씨는 “가해자가 분명히 있는데도 도리어 여성을 탓하는 상황들을 접한 적이 있다”며 “시위의 취지에 많이 공감하다”고 말했다. 한 간이매점의 주인은 거리 행진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촌에서 출발한 행진대는 밤 8시경 서울역 광장에서 동대문 운동장, 광화문 등에서 출발한 다른 시위대와 만나 축제의 장을 열었다. 2백50여명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웃음을 머금은 채 진행자와 함께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성의 일상을 통제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은 달빛체조와 달빛노래를 따라하는 모습은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활기차 보였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이송이(사회·06)씨는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항상 들어 밤에 나와 있으면 불안했었다”며 “행사에 참여하는 이 시간 만큼은 늦은 밤거리를 안심하고 다닐 수 있어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달빛 아래 여성들, 좋지 아니한갗라는 이번 행사의 모토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달빛시위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시위보다는 축제의 성격이 짙다. 세상의 편견을 넘어서 발랄함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은 노란색은 달빛시위의 이런 모습을 잘 보여 준다. 공동준비위원으로 참가한 부총여학생회장 정이나래(불문·05)씨는 “이번 시위는 여성들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달빛시위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27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됐으며 1백19개의 단체가 참여한 행사였다. 달빛시위의 가장 큰 의의는 이것이 이제 여성들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달빛시위의 총책임을 맡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원사(38)씨는 “달빛시위는 사회 통념을 깨는 여성들의 놀이 문화”라며 말했다. 이전의 달빛시위는 사회의 잘못된 시선에 분노를 표출하는 시위에 그쳤다면 올해는 사회의 편견에 대한 도전뿐만 아니라 늦은 밤까지 즐거움을 나누는 ‘한 밤의 문화 행사’로 나아갔다. 또한 원사(38)씨는 “달빛시위가 한국사회를 넘어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도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렇듯 달빛시위는 ‘밤’을 대하는 사회의 통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사회에서 ‘밤’은 여성을 위협하는 공포로 인식된다. 여성은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된다는 당연한(?) 논리는 여성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있다. 밤에 대한 공포가 여성의 몸을 제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밤늦게 돌아다니니깐 화를 당하지’라는 식의 논리는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들이 원하지도 않는데도 보호받아야 하는 몸으로 가두는 우리사회가 여성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글 신인영 기자 kongse@yonsei.ac.kr

/사진 김평화 기자 naei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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