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잘간 사람이 군대도 잘가는 세상

▲ 국방의 의무, 꼭 져야한다면 평등하게 지고싶다. /이미지디자인 석주희

“남학생이라면 다들 군입대 방법과 시기를 고려해 대학 생활을 설계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며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중앙도서관 앞에서 만난 김경진(공학계열·07)씨의 말이다. 이처럼 입대 당사자인 남성의 경우 군대를 인생의 한 과정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군복무 기간이 지금보다 훨씬 길었던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과거에는 육군 복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최근에는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카투사나 의무소방대 등 사회에 나왔을 때 실익을 얻을 수 있는 병과로 빠지거나 신체검사, 자격증 등을 잘 활용해 공익근무요원, 혹은 산업기능요원 등으로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명문대생’이라고 일컬어지는 고학력자 집단에서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의무소방, 카투사 = 명문대생용 군복무?

이러한 현상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20대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서 일반적인 군복무 외 복무 방식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졸 이하의 저학력자에게 군복무가 면제된 것이 이 즈음이며, 방위·학사장교 등의 군복무 방식이 생겨난 것도 이 즈음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난 의무소방대와 카투사 등은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의무소방대의 경우 지난 2001년 의결된 의무소방대 설치법에 의거해 2002년 처음 시행돼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애초의 의도인 ‘소방인력 부족 해소’와는 다르게, ‘고학력자의 편한 군복무 해결 통로’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호서대학교 소방학과 오규형 교수는 “국어, 상식 등 소방과 관련없는 시험과목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험에 유리한 명문대생들이 대거 합격하고, 정작 소방학과 학생은 1~2%에 지나지 않는다”며 “의무소방대 출신은 소방공무원에 특채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소방학과 학생들이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는데, 소방공무원에 관심도 없는 명문대생들이 대거 몰리는 것은 소방학과 학생들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카투사의 경우도 지원 자격에 토익, 텝스 점수 기준이 있어 명문대생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몰리고 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정말로 국방이 국민 모두가 져야 할 의무라면 어느 정도 평등한 복무 구조를 갖춰야 하는데 사람의 출신이나 학벌에 의해 군복무의 조건이 달라지고 특히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들이 이러한 구조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점은 사회 병폐다”라고 말한다. 특수한 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병과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고학력자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사항을 부여하는 지금의 구조는 형평성의 논리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불평등한 군복무, 이제 그만

군복무는 젊은 남성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친 신창욱(법학·03)씨는 “2년간 사회를 떠나 있다가 학교에 돌아오니 벌써 졸업한 친구들도 많아 뒤처진 느낌과 동시에 빨리 쫓아가야겠다는 조바심이 든다”고 토로한다. 이외에도 2년 이상 가족·친구와 떨어져 비현실적인 봉급을 받으며 힘든 훈련을 감내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은 젊은 층이 군복무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학벌과 재력 등 군복무에 필요한 능력과 관련 없는 기준이 입대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존재하는 현재 상황은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징병제를 폐지하지 않는 한 피해갈 수 없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군입대 문제. 많은 이해 당사자가 주목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복무 시스템의 형평성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는 구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정세한 기자 mightyd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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