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들은 내신점수를 잘 받기 위해 시험기간이면 밤을 새고, 수학능력시험이란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 그들에게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소위 ‘명문대’라 일컬어지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아니, 이 모습은 바로 몇 해 전 우리의 모습이었으니 따로 생각할 필요조차 없겠다. 이런 고생이 대학이라는 결승점에서 끝났다면 그나마 행복할 것이나, 대학생들은 ‘안정된 직장’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다시 뛰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학생들은 대기업에의 취직이나 각종 고시를 합격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학과를 선택한다. 그 길이 과연 ‘바른’ 길일지는 알 수 없으나, ‘빠른’ 길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처 자신이 원하던 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은 소위 ‘인기 학과’라 불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시 도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대학교에서도 예외없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전 마감한 소속변경 신청에 문과대 학생들이 대거 인기 학과로의 전과를 신청했다. 이런 상황은 문과대 측에서 소속변경을 신청한 학생들을 내부규칙에 의거, 변별해내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자신의 미래에 유리한 학과를 택해 시류에 발맞추려는 학생들의 욕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학생 없는 학문이 존재할 수 없음을 떠올린다면, 이와 같은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이 총체적으로 ‘인문학의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교육= 경제?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인문학과를 떠나게 됐을까? 현재와 같은 상황은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은 지난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발표된 ‘5·31 교육개혁안’이다. 당시 개혁안의 주된 내용은 대학설립기준의 다양화, 대학평가에 따른 차등지원 등이었으며, 이후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발표한 ‘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서 구체화 됐다. 그리고 현재 참여정부 아래에서 시행되는 정책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현 정부는 5·31 교육개혁안의 하나였던 대학평가에 따른 차등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2004년 대학운영에 관련된 재정지원 사업을 기존의 일반지원 사업에서 특수목적 사업으로 전환한 상태다. 다시 말하면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일부의 대학만을 한정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 간의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으로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교육과 접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대학교 김혜숙 교수(교과대·교육행정학)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아래에서 인문학과는 사회에서의 진로와 연계성이 약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기초학문 분야를 기피할 수 있고, 이런 점이 인문학의 위기와 직결될 수 있다”고 말해 대학을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교육을 통해 ‘수요자에게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공급자에게는 더 강한 경쟁력을 갖게 하겠다’는 목표가 인문학 관련 학과에게는 빈부차이를 늘려 위기를 맞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함정이다.

우리대학교 역시 이러한 모습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대학교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학생들의 전공선택에 있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지난 1996년부터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부제의 기본 취지와는 달리 대다수의 학생들이 경쟁력 있는 학과로의 진학을 희망하는 바람에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실정이다. 실질적인 예로 우리대학교에서 지난 2005년 10월, 2006학년도 1학기 전공배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예비전공 신청의 통계 결과를 살펴보면, 영문학·경영학 등 인기 학과로 학생들이 현저하게 몰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연세춘추」2005. 11. 28일자 참조) 이와 같이 정부의 대학 간 평가를 통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경쟁력을 갖춘 대학 안에서도 학과 간의 서열화를 조장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정한 ‘조화’가 필요한 시기

이렇듯 신자유주의 교육이 부정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교육을 강조하며, 수요자 중심의 교육체제를 만들어 학생들이 더욱 편리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본래 취지는 긍정적인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신자유주의가 교육을 지배하는 형상이 아니라 이로운 것을 취하는 실리적인 경제논리와 백년을 바라보는 우직한 교육의 힘을 조화시켜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교육’을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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