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이상정 정기자

기사를 쓸 때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이 있다. 기사의 전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 입맛에 맞는 멘트나 의견만을 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는 독자들과 소통하려면 기사에서 기자의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임해야 한다.
지난 1556호에 실린 데이트 메이트 기사를 취재하며 생긴 일이다. 원래 이 기사의 방향은 데이트 메이트 현상의 폐해를 지적하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올바른 사랑’의 방식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많은 취재원들을 만났고, 그 때마다 데이트 메이트의 부정적인 면을 질문거리로 삼아 멘트를 구성했다.
그러던 차에 데이트 메이트 현상에 대한 평론 기사를 쓴 경험이 있다는 한 전문가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에게서 들은 말들은 내 기사 방향을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어떤 현상이든지 한 쪽 면만을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기사는 다이어리에나 쓸 글이지, 신문에 실을 만한 글은 아닌 것 같군요.”
취재한 사실이 기사에 담담하게 녹아들지 않고 기자의 의도에 따라 심하게 요동칠 때, 그 기사는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 활동을 하면서 내가 속으로 되뇌는 말은 ‘과욕을 버리자’는 것이다.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기사에 쓴다면, 나 자신은 후련함을 만끽하게 되겠지만 독자들은 참을 수 없는 거북함을 느끼는 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내는 여러 매체에서 쏟아낸 엄청난 글들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 글을 읽다보면 하나같이 저마다의 ‘착한’ 논리들로 정당화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공신력 있는 학내 언론 매체들은 그 책임이 남보다 더한 것이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사적인 술자리나 개인 홈피의 다이어리에나 적합할 만한 말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생각을 ‘이게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절한 준거를 제공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기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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