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숨어있는 이중적인 성의식을 파헤치다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성에 대한 주제가 많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박영민(사회·04)씨나 “선배 또는 동기와의 대화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다보니 개방화되는 느낌”이라는 정동운(경제·01)씨와 같은 경우가 대다수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언론매체에서 성에 관한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예전보다 개방적인 사회로 변화해가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과 관련된 논의에서 얼마나 바람직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을까?

설문에서 드러난 성의식

실제적인 대학생의 성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대학교에서 ‘현대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담당하는 유럽사회문화연구소 오정숙 연구원이 연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살펴보자. 이 조사는 오 연구원이 유럽의 성문화를 연구하면서 ‘우리나라 대학생의 성의식’은 어떨까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먼저 성경험의 유무를 묻는 질문에 전체 1백35명(남: 63명, 여: 72명) 가운데 ‘있다’는 대답이 남자는 33명, 여자는 13명이었고, ‘없다’는 대답이 남자는 30명, 여자는 59명이었다. 대학가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 때문에 성경험이 있는 학생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체의 34%에 불과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 가운데 남학생의 비율이 여학생보다 30% 가량 많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오 연구원은 “여성은 여전히 순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면화돼 자신의 성경험을 감춰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동거의 가능여부를 묻는 조사에서 전체적으로 80% 가까운 학생이 찬성을 표시했지만, ‘나는 못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응답도 다수 눈에 띄었다. 특히 그 이유로 ‘나중에 헤어져서 소문나면 여자만 손해’라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은, 대학생이 여전히 여성만의 순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따라서 위의 설문조사는 대학생들 사이에 상당히 개방적이면서도 동시에 보수적인 성의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

이와 같은 성의식의 이중적인 잣대에서 비롯된 고민이 있다면 무엇일까? 대학생이 되면 성에 관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지고 나름의 성의식을 확립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기 자신의 성의식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기도 한다. 이는 “성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가진 남자친구들의 가치관을 수용한다고 해도 정작 내 여자친구의 가치관도 마찬가지라면 용납하기 어렵다”고 내면적인 딜레마를 밝히는 김한균(신학·06)씨의 경우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프니까 사랑하지 말까?」라는 책에서 성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낸 신촌 마음클럽 신경정신과 이규환 원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일반적으로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자신에게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이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성의식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보는 기회를 갖는 게 중요하다.

▲ 사회적 각본에 따른 이성교제는 이중적 성의식을 낳을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석주희

그러나 여성들의 경우에 아직까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밝히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와 더불어 대개 각자의 성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중적인 성의식은 남녀 간에 건전하고 자유로운 성 논의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이번 학기에 ‘성과 문화적 재현’을 수강하는 최솔(심리·00)씨는 “조모임에서 새내기 여학생들에게 수업내용을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역시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 성과 관련된 주제를 공유하기에는 불편한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대학교에서 ‘성과 인간관계’ 수업을 진행하는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변혜정 연구교수는 “물론 예전보다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내는 것 같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편견이 있다”며 “아직 완전한 개방화라고 말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성의식의 개방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마음클럽 이규환 원장은 비록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이중적인 가치관이 존재하지만 “성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가치관을 포용해 성욕을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인간의 자연적인 모습을 도출하는 것이 진정한 성의 개방화라는 이야기다.

건전한 자의식을 위해

대학생이 된 우리는 여러 가지로 해방감을 맛본다. 그 중에서도 그동안 억눌러왔던 성에 대한 호기심을 보다 공공연하고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다는 해방감이 가장 짜릿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알게 모르게 성의식에 대한 왜곡된 인습을 학습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다. 오는 21일 ‘성년의 날’을 맞이해 자신 안에 자리한 이중적인 성의식을 되돌아보자. 이제는 솔직하고 건강한 성 논의가 꽃피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글 위문희 기자 chichanmh@yonsei.ac.kr
/사진 송은석 기자 insomniabo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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