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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불이] 혼불로 승화되어버린 여인의 한『혼불』의 땅, 전라북도 남원에 가다
  • 김정하 기자
  • 승인 2007.05.07 00: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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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윤영필 기자 holinnam@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원고를 쓸 때면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던 작가 최명희. 그녀가 처음으로 『혼불』이라는 이름의 바위에 새긴 문장이다. 작가는 지난 1980년 봄, 이렇게 힘겹게 첫 마디를 뗀 후 무려 17년 동안 바위를 뚫는 듯한 고통을 인내하며 『혼불』을 집필했다. 그리고 결국 그 인고의 시간들은 원고지 1만 2천여 매 분량에 달하는 대하 예술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소설 한 마디 한 마디를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바위에 새기 듯 했는데, 첫 시작이야 오죽했을까? 그래서인지 소설의 첫머리처럼 『혼불』의 땅 남원은 쾌청한 하늘을 끝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혼불』의 땅과 얼굴을 마주하며

혼백이 어그러진 듯한 자욱한 안개와 꼬리치며 흩날리는 여우비를 가르며 4시간 가량 숨 가쁘게 달리던 철마는 드디어 남원역에서 숨을 돌렸다. 철마의 뜨거운 숨결을 뒤로 한 채, 차를 타고 20분 정도 남원 외곽 사매면으로 접어드니, 소설 속 매안 마을의 실제 배경인 노봉 마을이 눈에 잡힌다.

서산 노적봉을 등 뒤에 병풍같이 둘러 세우고 멀리 아득한 동쪽으로 지리산의 능선을 바라보는 마을 매안의 지형은, 검푸르게 우거진 소나무 산 노적봉의 기맥이 아래로 벋어 내리다가 기슭에 이르면서 평평한 둔덕을 짓고 고이는데, 그 자락 끝에 나붓이 드러난 발등과 같이 도도록하다… 이 노적봉의 발등이 매안마을이다.

노봉마을에 발을 내딛자, 적막 속에 기자의 발자국 소리만 고인 빗물을 따라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매안 이씨 가문의 종부(宗婦)로서 19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청암 부인. 그녀가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며 무너져 가는 가문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서릿발 같은 기운을 떨치던 이 땅. 하지만 지금 그 기상은 노적봉에 걸린 안개처럼 쓸쓸하다.

흥망성쇠의 역사와 함께

스산한 안개 사이로 치솟은 노적봉 소나무 숲의 짙은 먹빛 빛깔이 마을을 향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그 빛깔을 머금은 청호저수지가 수줍은 새색시처럼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 /사진 윤영필 기자 holinnam@
서북으로 비껴 기맥이 새어 흐를 염려가 놓였으니, 마을 서북쪽으로 흘러내리는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 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 만한 곳이다, 하고 이르셨더란다.

소설 속 청암부인의 택호 첫머리를 따서 청호( 湖)라 이름 지어진 청호저수지는 산의 기운을 받아 집안을 살리겠다는 그녀의 뜻에 따라 만들어졌다. 치수(治水)의 거사를 일으켜 저수지에 물이 넘실대면서, 과연 노적봉의 기운을 받았는지 청암부인 댁 종갓집 솟을 대문의 기상은 찌를 듯이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청호저수지에 가뭄이 들어 종가를 지켜주던 저수지의 혈이 마르면서 종가의 권위는 도전받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처럼 매안 이씨 종가의 권위의 상징이었던 청호저수지는 지금은 노적봉 기슭에 다소곳이 앉아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를 처연히 맞고 있을 뿐이다.
청호저수지 뒷산 능선에는 달맞이 동산이 빗속에 얼굴을 적시고 있다. 이 동산은 작은 아씨인 강실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했던 춘복이 정월대보름날에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곳이다. ‘나는 상놈껍데기를 벗고 싶다. 작은아씨 내 자식 하나 낳아주오’라며 달을 향해 깊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던 춘복이의 한 서린 눈물의 기도가 아직 달맞이 동산을 적시고 있는 듯하다.

옛 영광은 사라지고

노적봉의 엄연한 기상이 벋어 내리면서 또아리를 튼 그곳에 높다랗게 솟아 오른 검은 지붕은, 매안의 이씨 문중 종가의 것이다… 솟을대문 옆에 하늘로 치솟은 은행나무 우람한 둥치며, 중마당 안의 매화 고목 늙은 줄기가 반이나 말라 버린 듯 거멓게 웅크리고… 안마당 화단에 봄이면 흐드러진 덜기로 피어나는 모란과 작약의 희고 붉은 꽃무리와 뒤안의 감나무들, 후원의 대숲…

청호저수지를 뒤로 하고, 첫번째 삼거리에서 발걸음을 돌려 곧장 위로 올라오면 위압하는 듯한 종갓집 솟을 대문이 좁은 골목길 끝자락에 걸려있다. 그 솟을 대문은 멀리서 보면 마치 우뚝 솟아 마을을 내려다보는 듯하지만,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조금씩 그 대문의 위엄이 옹색해짐을 느낀다. 청암 부인의 죽음과 종가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증손자 강모 탓에 종가는 더 이상 그 기상을 떨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옛 위엄은 소설 속에 묻어둔 채 그저 종갓집 뒤꼍에 터만 덩그러니 남은 노봉서원과 매안마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비록 철길은 끊어졌어도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찰방도, 역마도, 역졸도 모두 없어지고 그 대신 철도와 정거장이 생겼다… 정거장 역사가 세워지면서 역장의 관사와 역원의 집, 그리고 밥집이며 점방들이 처마를 맞댄 옆에 몇 채의 새 집이 들어서고 주막과 여각이 어울려 생겨났다.

▲ /사진 윤영필 기자 holinnam@
노봉마을을 벗어나 ‘점잖은 밥 한 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동안’ 걸으면 저 멀리 옛 서도역이 살며시 눈짓한다. 지난 2002년 전라선 철도가 옮겨지면서 헐릴 위기에 처해 있던 것을 주민들과 남원시에서 매입해 1932년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영상촬영장으로 보존해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끊어진 철길 위를 걸으며 강모와 효원이 기차를 타고 신행을 왔을 때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그러자 마치 기차가 석탄가루를 날리며 목쉰 소리로 미끄러져 오는 듯한 환영이 눈앞을 스친다.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
작가 최명희는 지난 1996년 ‘온 몸에 물이 차오른다’는 문장으로 『혼불』의 바위조각을 미완성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2년 뒤, 난소암으로 투병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한 채 혼불이 돼 세상을 등졌다. 『혼불』에 자신을 불태운 작가 최명희. 청암 부인의 눈물이 비와 안개가 돼 떠도는 남원 땅 매안마을을 밟으며 고작 하루 그의 혼을 엿보았을 뿐이지만, 내 온 몸에 물이 차오름을 느낀다.

김정하 기자  boychunh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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