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동권(아래 비권)’이라는 단어가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90년대 말 기존 학생운동의 퇴조와 함께 비권이 등장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문민정부 이후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룩한 사회 분위기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80년대 학생운동의 필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96 연세대 사건 △’97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등에 학생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연세대 사건 직후 우리대학교 34대 총학생회로 ‘비한총련’ 계열인 ‘대학다움’ 선본이 당선된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이에 대해 지난 1998년 상경·경영대 학생회장을 했던 윤성일(경영·95)동문은 ‘연세대 사건의 후유증’이라고 분석을 했다. 이 사건으로 생긴 한총련의 부정적 이미지가 일반학생들에게 비한총련을 선택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1996년 11월 25일부터 이틀간 「연세춘추」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당시 한총련의 시위방법에 대해서 응답자의 45%가 ‘매우 반대’를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응답자 7백16명). 이는 ‘운동권’의 과격한 이미지가 ‘비권 학생회’를 낳았다는 해석의 근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윤 동문은 “학생운동이 침체한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정부와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탄압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80년대부터 이어져왔던 통일 운동을 정부가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공격함으로써 학생운동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바꿨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힘을 잃은 학생운동은 외환위기 이후 대중적인 운동으로 풀어가지 못한 한계를 보였다. 투쟁적인 시위방법이 학생들에게 반감을 샀다는 의견이다. 윤 동문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전반적인 정서는 달라졌다”며 “신자유주의 가치관이 흘러들면서 학생들과 학생운동 간의 괴리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당시 학생사회에는 시대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과 함께 여러 가지 노선의 학생회가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80~9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생겨난 비권 학생회는 학생들의 요구를 풀어가기 위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우리대학교 44대 총학생회 ‘WoW 연세’의 등록금 문제 해결 방법이 대표적인 예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 발표는 없지만 ‘WoW 연세’는 등록금 문제를 외부에서 기부금을 통해 학교재정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학내 사안에 대한 총학생회의 이러한 접근은 소위 ‘운동권’이 다수인 단과대 학생회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비권을 표방한 한국외국어대학교 41대 총학생회 ‘Change the HUFS 4u’ 사무국장 옹일환(영문·97)씨는 “지난 2년간 운동권 성향의 단과대 학생회와 충돌이 잦았다”고 말했다. 그 원인에 대해 옹씨는 “각자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학생들끼리 갈등이 생겼다”고 밝혔으며 “지금은 서로의 이념적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지만 ‘비권’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들이 많다. 강 아무개(정보산업공학·03)씨는 “학생회는 학내 사안을 다루는데 있어 정치적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탈정치를 앞세우는 것은 정치에 무관심한 시대에 편승하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지난 해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뉴라이트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 비권 선거본부가 뉴라이트에게 금품을 받았다고 양심선언을 한 것. 이에 대해 뉴라이트 대학생연합 김경욱 사무국장은 “선거학교를 열어줬을 뿐이다”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당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장이었던 황정림(국어국문·00)씨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자유게시판에 비권 선본을 찾는 글을 올렸다”며 “후보 학생과 ‘선거자금으로 3백만원을 줄 수 있다’는 식의 전화내용이 오고간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비운동권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비운동권의 ‘비(非)’가 모호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비권 학생회는 ‘학내 복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학생회’ 혹은 ‘우파적인 성향을 가진 집단’으로 여겨지는 등 아직 그 용어의 정의가 뚜렷하지 않다. 이러한 모호성은 어떤 학생운동이 기존 운동권 학생회의 노선과 다르면 모두 비권이라고 통칭되게 만들었다. 이제 비운동권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야 할 것이다.

/조근주 기자 positive-think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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