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투쟁의 기수, 서명숙을 만나다

올해 초 이슈가 된 「시사저널」 사태는  ‘편집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오마이 뉴스」에서는 기자들이 전면 파업에 나선 지난 1월 11일 릴레이기고를 시작했다. 이는 「시사저널」 기자들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성원을 담은 것으로 서명숙 전「시사저널」 편집국장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녀는 여기서 ‘짝퉁 「시사저널」’이라는 표현을 탄생시켰고, 나아가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들이 엮은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공동집필하며 「시사저널」을 지키기 위해 뛰고 있다. 지난 2월 12일 『기자로 산다는 것』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그녀를 만났다.

‘짝퉁’에 분개한 기자들

떠난 직장의 일에 투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사저널」을 떠난 지 3년이 넘은 서 씨가 이토록 열성적으로 「시사저널」 정상화를 위해 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후배들을 세상물정 모르게 가르친 ‘죄’에 책임감을 느껴서요”라는 역설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타협할 줄 모르고 우직하게 펜만 알던 후배들이 펜을 놓고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으리라. 서 씨는 편집권을 ‘누군가 소유하고 휘두르는 것이 아닌 매체 구성원 모두의 공유물임과 동시에 매체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편집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며 직원에게는 복종의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사장과 ‘항명’을 밥먹듯이 하던 「시사저널」의 전통이 ‘문화 충돌’을 일으킨 거죠”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현 사태의 원인을 설명했다. 그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경제권력의 편집권 침해를 지적했다. “권력이 정계에서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이제는 재벌이 언론에 손을 뻗치게 된 겁니다. 대부분의 매체가 광고를 주 수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재벌의 입김이 더욱 거세지는 거죠.” 이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는 구성원 스스로 강한 매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매체가 널리 읽힌다면 광고주 입장에서도 광고를 싣지 않을 수 없죠. 좋은 기사를 통해 광고주가 광고를 안줄 수 없는 영향력 있는 매체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

서 씨는 여성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시사지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한 언론계의 기념비적 존재다. 서 씨가 정치부장 물망에 올랐을 때 윗사람들은 정치부 기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 남성인데 여성이 정치부장을 할 수 있을지를 우려했단다. 그런 상황에서도 국장까지 역임하며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배경을 소개한다. “고향이 제주도인데, 거기는 여자가 많아서 여자들이 별의별 일을 다 하거든요.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에서도 실질적인 경영자는 늘 어머니였고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성차별의 개념을 익히지 못한 게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넘어가지 못한 거죠.” 그랬던 그녀가 차별의 ‘벽’에 부딪힌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1976년 고려대에 입학한 그녀는 「고대신문」기자가 됐는데, 하루는 한 남자 선배가 걸레를 던지며 “책상 다 닦아”라고 말했단다. 주위의 많은 동료들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자기에게 그런 임무(?)가 주어진 것에 그녀는 당황했고 또 분노했다. “이 걸레를 선배 얼굴에 집어던지고 신문사를 나갈 것인지 여기 남아 그런 악습을 바꿀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죠. 결국 신문사에 남았고, 그 후 많은 것을 바꿔 나갔죠.”

그녀는 「시사저널」 사태의 최대 피해자를 ‘독자’라고 했다. 매체는 매체를 아껴주는 수용자에게 가장 ‘맛있고 몸에 좋은’ 내용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진정 무서워해야 할 것은 윗사람이 아닌 독자다”라는 그녀의 말은, 언론인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화두가 아닐까. 일선 기자로 활동하던 때도, ‘전직 「시사저널」 기자’가 된 지금도 여전히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서 씨. 인터뷰 내내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 받으랴, 손님맞이하랴, 인터뷰하랴 분주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글 정세한 기자 mightyd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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