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마음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김영아 기자 imstaring@yonsei.ac.kr

새해 벽두부터 유명인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화두로 떠오른 ‘자살’. 지난 2006년 통계청의 집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전체 사망자 24만5천여 명 가운데 자살 사망자는 1만2천여 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하루 평균 33명 즉, 40분에 1명꼴로 자살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수치이다. 이와 같은 높은 자살률은 현대인들의 마음이 많이 병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다. 흔히 몇몇 사람들만 앓는 것으로 오해받는 정신질환은 ‘마음의 감기(感氣)’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누구나 앓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빠름’과 ‘성장’만을 추구하다 마음의 병을 얻게된 현대인들에게 심신의 여유와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기수련과 명상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간 한국기치유연구회, 국선도, 정신세계사, 단학선원을 비롯해 태극기공회, 아난다마르가, 라자 요가 등 수많은 명상·요갇기공 단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명상 관련 단체에 등록돼 있는 수련 인구는 불교계의 참선을 포함해 약 5백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氣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현대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氣)’란 무엇일까? 기(氣)라는 한자어는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솥에 넣고 불을 땔 때, 솥뚜껑이 들썩이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기라는 개념은 호흡을 하는 숨, 공기가 움직이는 바람을 뜻하는 가벼운 의미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의 노자, 장자가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기의 현상으로 이해했고, 한(漢) 대에 이르러서는 일상의 길흉화복에까지 음양오행을 적용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됐다. 또한 송(宋) 대에는 기를 구체적인 개체의 존재현상으로 생각해 이기(理氣) 철학의 주요개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 정신과학연구소 박병운 소장은 “동양에서는 추상적 개념인 기를 우주의 근본으로 가정했다”며 “모든 만물은 하나의 기에서 비롯됐으며, 기가 응축된 것이 고형적인 물체가 됐고, 기가 흩어진 것이 무형적인 비물질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에서는 이러한 기의 개념을 어떻게 설명할까? 「氣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한 한양대학교 공학대학 조효남 교수는 “기현상의 일부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했지만, 아직은 외기공과 내기공에 의한 원적외선 검출, 오로라 측정, 뇌파의 변화 등 기현상의 피상적 측면만 이해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나를 찾는 명상

기체조나 명상, 요가는 몸속의 기를 모아 기혈(氣血)을 운행하고 각 부분을 조절하는 통로인 경락을 통해 흐르게 해, 그 흐름이 원활하도록 도와준다. 사단법인 세계 국선도 연맹 신촌 수련원 윤기성 원장은 “국선도는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의식을 쉬게 하는 과정인 명상과 호흡을 중시한다”며, “현대인들은 지기(地氣, 음식)와 천기(天氣, 공기) 중에서 잘 먹는 것 즉, 지기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은 음식 없이도 3일을 살 수 있지만, 숨을 못 쉬면 5분도 살기 힘든 것을 보더라도 호흡 명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대학교 노화과학 연구소 조홍근 연구교수(의과대·심장내과학)는 “우리 몸은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에 의해 지배되는데, 명상은 부교감신경을 향상시키고 교감신경을 억제함으로써 몸에 가해진 여러 스트레스를 이완시킨다”고 말했다. 덧붙여 “명상이나 깊은 자기성찰 등을 하게 되면, 면역기능의 향상과 항산화·항염증 반응이 증가해 성인병과 암 등의 발생률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한편, 우리대학교 증산도 동아리 회장 이경윤(인문계열·06)씨는 “증산도의 태을주 수행은 위로 솟으려고 하는 심장의 불 기운을 가라 앉히고, 아래로 흐르려는 신장의 물 기운을 위로 올리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수련법”이라며 “수행을 통해 몸과 정신의 조화와 통일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건강한 명상을 위하여

하지만 명상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윤 원장은 “맑은 기운을 많이 마시려고 힘을 줘서 배를 밀어 호흡하려고 하거나, 숨을 지나치게 오래 참으려고 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깊은 숨을 쉬는 것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또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정신과 김재진 교수(외과대·정신과학)는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명상을 과하게 할 시에는 최면상태나 환각, 환청 등의 증세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장기적인 현상인지 일시적 현상인지 정확한 진단을 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화병ㆍ스트레스클리닉 김종우 교수도 “기 수련은 어디까지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이므로 움직이는 수련을 병행하지 않고 명상에만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기를 지나치게 신비스럽게 포장하며, 마치 기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에너지인양 과장하는 경향도 있다. 이에 대해 조효남 교수는 “기를 설명한 일부 서적들 중에는 상업적·건강만능주의적인 과장으로 가득찬 것도 적지 않다”고 관련 서적의 구입시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조홍근 연구교수는 “개인의 건강은 사회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작은 도움을 주는 것 역시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윤 원장도 “수련은 이를 통해 본인 스스로 덕을 쌓고 주위에 이를 전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데 목적이 있다”며 뜻을 같이 했다.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마음 수련이 단순히 개인을 위한 치료에만 그치지 말고 우리 사회 모두를 건강하게 만드는 운동으로 커 나가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