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을 고통 없이 맞이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한번쯤은 이러한 환상에 잠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인간의 권리일까, 아니면 의무일까? 이러한 의문을 던지면서 유럽과 할리우드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씨 인사이드(The Sea Inside)』에 주목해 보자.

▲ 『씨 인사이드』, 라몬과 훌리아 /자료사진 네이버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인 라몬 삼페드로의 범상치 않았던 인생을 그려낸다. 그는 젊을 적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아 30여년이나 병상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그 시간 동안, ‘달콤하게 죽을 권리’를 얻기 위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힘든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두 여인이 있다. 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변호사 훌리아와 반대로 자연사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로사가 바로 그들이다.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항상 따뜻한 미소로 주변 사람들을 맞이하는 라몬. 과연 그는 자신의 뜻대로 안락사할 수 있을까?

영화 『씨 인사이드』는 논픽션에 근거하면서도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십분 발휘해 ‘실제’와 ‘환상’을 장면 사이사이에 버무려낸다. 안락사라는 무거운 소재를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는 논쟁이 아닌 라몬이라는 인간에 초점을 맞춰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의 주의를 불러일으킨다. 단순히 ‘안락사’라는 문제를 다뤘다고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오히려 ‘인간의 자유의지’ 그 자체를 다뤘다고 해야할 것 같다.

영화에서 ‘바다’라는 소재는 이중적인 모습을 띤다. 라몬의 평생을 고통스럽게 만든 사고가 일어난 곳이자, 그에게 탈출을 의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창문 너머의 바다는 생애에서 이루지 못한 라몬의 희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로 쓰인다. 또한 배경음악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라몬은 병상에 있는 동안 오직 음악만을 벗삼아 생활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의 배경음악은 그의 심정만큼이나 애잔하고 절절하게 흐른다.

라몬 역의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영화 속에서 몸 대부분이 담요로 가려져 있었기에, 오직 얼굴 표정 하나만이 그가 연기한 거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표정 하나만으로도 라몬의 절박함을 소름끼치게 잘 표현해낸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50대의 라몬을 연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30대의 나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감독인 아메나바르는 그를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바르뎀은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배우이다.” 이렇게 배우와 배역 사이의 간극이 있었는데도 왜 감독은 바르뎀을 선택했을까? 결국 그의 선택이 옳았음은 바르뎀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확인됐다.

영화 『씨 인사이드』는 어렵다. 비록 영화를 볼 때는 라몬의 훈훈한 인격에 빠져 잊고 있겠지만, 극장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관객에게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유난히 남들보다 더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영원히 화두로 남을 것 같다.

/이상정 기자 iwhippyland@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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