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0호 십계명

한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아래 FTA)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는 한미 FTA 체결이 지난 5년간의 실정(失政)에 대한 면죄부라도 될 것으로 생각하는지, 무리하게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거센 시위는 경찰의 과잉진압과 함께 또 하나의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시끄러운 곳이 하나 더 있다. 07학번 새내기가 입학한 우리대학교의 캠퍼스와 신촌이 그 곳이다. 대학생활의 로망은 늘 술과 함께 한다. 술자리에서는 선배들로부터 ‘밥 얻어먹는 노하우’, ‘애인 생기는 비법’ 등을 전수 받는다. 가끔 운이 좋아서 멋진(?) 선배를 만나면 ‘학점 관리법’을 배우기도 한다. 술집을 나와서는 ‘우리가 있어 태양이 뜬다’는 멋진(?)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연세를 하나로 묶고, 또 그 하나를 다른 타자로부터 분리시킨다.

요즘의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인가 대학가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비운동권’이라는 단어가 선전구호가 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대학교를 포함한 많은 대학에서 ‘비운동권’ 후보들이 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비운동권 학생들은 “요즘의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지 운동이나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학생들에게 외친다.

물론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변하지 못한 운동권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을 탓할 수는 없다. 독재정권·유신헌법과 같은 공공의 적이 없는 현실에서 지난날과 같은 운동권에 대한 기대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까지 운동권으로 몰아 죄악시하는 대학가의 분위기는 분명 문제다.

대학생에게 ‘예비지식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대학생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대학생에게 갖는 기대는 신입사원에 대한 기대감과는 분명 다르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세상을 향한 비판’이야말로 사회가 대학생에게 갖는 기대며 대학생의 의무이기도 하다. 세상은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사립학교법 재개정 등의 문제로 사회는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없는 지금의 대학생에게 ‘예비지식인’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유효한 것인가.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맑스(Marx)’를 읽지 않으면 대학생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무슨 책을 읽지 않으면 대학생이 아닌가요?”라는 교수님의 질문에 강의실 뒤편에서 조용히 “토익 책이요”라는 답이 나왔다. 오늘날 대학생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우리대학교는 한국사회의 엘리트 양성소다. 여기서 엘리트라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인간,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다. 잘못된 엘리트의식이야말로, 스스로가 속한 집단을 엘리트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는 독소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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